글
톨비밀레)독 (마비전력 60분 연습)
마비노기/60분 전력
2016. 4. 12. 02:07
0123 독
달이 밝은 밤이였다. 노곤한 피로감을 기분좋게 끌어안으며 톨비쉬는 맞닿아오는 온기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새근거리는 숨소리는 평화의 상징이자 안락함의 노랫소리. 톨비쉬의 품에 안긴채 곤히 잠든 밀레시안은 세상이 떠내려가도 모를 깊은 잠속에 빠져있었다.
톨비쉬의 손길이 관자놀이를 지나 뺨, 목덜미에까지 내려갔지만 밀레시안의 표정은 요지부동. 톨비쉬가 밀레의 어깨에 입을 맞추었다.
"....."
혼자만에 느긋한 사랑도 잠시, 연인과의 달콤한 여운에 잠겨있던 톨비쉬가 고개를 들며 이불을 끌어당겼다.
온기가 떨어져 나간것을 느낀듯 가만히 누워있던 밀레시안도 조금 잠자리를 뒤척거리며 손을 뻗어왔다. 사랑스러운 손길. 하지만 체온대신 이불을 덮는 엘베드의 조장은 이미 검을 잡았을때와 다름 없는 서늘한 눈으로 문을 노려다 보았다.
머리를 세운 뱀의 살기는 방안에서 뿐만 아니라 문 넘어에서도 풍겨져나오며 낮은 경고의 바람소리를 내었다.
기척없이 다가온 문밖의 방문자는 일부러 문고리에 손을 얹으며 톨비쉬에게 무언의 메세지를 보냈다.
'나와'
무례한 방문자의 도발에 톨비쉬는 태연한 얼굴로 바지를 챙겨입으며 문으로 다가갔다. 상의를 입을 생각은 없는듯 호신용 검을 집어 문뒤에 세워두는 톨비쉬가 뒷목을 쓸어내렸다.
기분이 나쁜 기색이 역력했다. 소중한 시간을 방해받은것으로도 모자라 오만방자한 태도라니.
대체 누구인지 얼굴 좀 구경해야겠다는 톨비쉬가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암실같이 어두워졌던 방안으로 복도의 등불이 새어들어왔다. 은은한 오렌지빛 조명을 등지고선 커다란 덩치의 기사가 호오, 하는 낮은 목소리와 함께 허리에 손을 짚었다.
낯익은 목소리와 모를수 없는 갑옷, 자로 재어 맞춘듯 딱 마주치는 시선을 보며 톨비쉬 또한 하하하, 이건 또 무슨 장난이랍니까. 하고 방문자와 똑같은 자세로 허리에 손을 얹었다. 두사람의 톨비쉬가 상대방을 위아래로 훑으며 빙긋이 웃었다.
"드디어 이런날이 왔군요"
"분명 기다렸던 상황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재미있지는 않군"
방안의 톨비쉬가 빙긋이 웃으며 문을 열었다. 방문밖의 톨비쉬가 한숨을 쉬며 방안으로 들어서자 활짝 열렸던 문은 소리소문없이 닫히며 자물쇠를 걸어잠갔다.
방안에 두개의 의자가 끌어당겨지는 동시에 난로위로 수많은 장작들이 쌓아올려졌다. 밖에서 돌아온 갑옷의 톨비쉬를 배려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회의를 앞서 적절한 조명을 켜기 위함이기도 했다.
침묵이 잠재우고 있는 것은 오직 곤히 잠든 밀레시안뿐. 두 톨비쉬들은 똑같은 자세로 다리를 꼬아 앉으며 각자의 소지품에서 은색의 병은 꺼내들었다.
"그럼, 진실을 가려볼까요?"
방안의 톨비쉬가 웃으며 턱을 까딱였다.
"언젠가 이런일이 한번쯤 있을꺼라 생각했죠"
"그땐 즐거울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저는 즐겁습니다만"
"나는 아니야."
갑옷을 입은 톨비쉬는 방안의 톨비쉬를 손가락으로 튕겨올리듯 가르켰다.
"이런, 이런것도 바람으로 치는겁니까?"
"그런게 아니라는건 잘 알지만, 그래도 마음에 안들어"
"그런게 아니라는건 잘 알지만, 그래도 마음에 안들어"
방안의 톨비쉬가 입을가리며 쿡쿡거리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자신이 이렇게 속이 좁은 남자였던가.
객관적으로 질투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놀라운 경험속에서 톨비쉬는 촛불에 병을 비쳐보았다.
은백색의 탁하면서도 반짝거리는 이 액체에는 고농축으로 압축된 신성력이 깃들어 있었다.
아튼시미니의 아튼시미니를 따르는 오로지 주신을 위해 축성된 신성력의 결정체.
누가 진짜이든 가짜이든 그 신성력만은 진짜인건지 서로의 병에서는 정확하게 같은 파형의 에테르가 세어나오고 있었다.
톨비쉬가 병을 내밀자 맞은평에서도 병을 내밀어왔다. 맞바꾼 병에서 다른점을 찾으려는 두 톨비쉬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정말 똑같네요. 다른점은 없는걸까요?"
"글쎼, 충분히 많지 않나? 복장이라던가, 기억이라던가"
"글쎼, 충분히 많지 않나? 복장이라던가, 기억이라던가"
"저는 오늘 하루종일 별과 함께있었습니다"
"나는 오늘 하루종일 별과 떨어져있었지."
톨비쉬는 언짢은 얼굴로 머리를 짚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갑옷의 톨비쉬는 이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고 싶은 모양이였다. 톨비쉬의 시선이 침대를 스쳐지나갔다. 아직 주인의 온기가 남아있는 침대의 시트는 잔뜩 구겨진 상태로 또다른 주인을 보호하듯 감싸안고 있었다. 노곤한 숨소리가 톨비쉬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뭐 별다른일은 없었나?"
"없었습니다. 저는 어제 저녁부터 휴가였으니까요."
"없었습니다. 저는 어제 저녁부터 휴가였으니까요."
"그럼 아침이 갈림길이로군. 나는 아침에 갑작스럽게 임무를 받았으니까"
양측의 기억을 짜맞추면서도 두 톨비쉬의 시선은 여전히 밀레시안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한쪽으로만 누워있던 밀레시안이 반대편으로 돌아누우며 베개를 끌어안았다. 돌아눕느라 한껏 드러난 등위로 난로의 붋빛이 타고흘러내렸다. 깨끗하고 매끄러운 등위로 점점히 수놓여진 잇자국에 톨비쉬가 혀를 차며 병의 마개를 날려버렸다.
"굉장히 서두르는군요"
"그러는 너는 굉장히 시간을 끄는군"
두 톨비쉬의 사이에서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언쟁은 오고가지 않았다.
언젠가 한두번정도 있을것이라 생각했던 일이였고 몇번인가 상상했던 범위내의 일이였다.
두명의 톨비쉬. 서로를 꼭 닮은 도플갱어. 그 행동이나 버릇은 물론이고 기억마저 똑같은 대상이 나타난다면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것인가.
톨비쉬는 은색의 병을 정제하며 기억이 같다는 사실에 해결점을 걸어두었다. 만일 복제된 자신이 자신과 똑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이 검증법을 피해낼수는 없을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신성력의 독약은 아름다운 은백색의 빛을 흩뿌리며 두 톨비쉬의 손에 들어올려졌다.
"물건도 복제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애초에 타인의 신성력을 완전하게 복제할 수는 없겠죠"
"병의 내용물은 얼마든지 훔쳐낼 수 있지만 에린의 하늘아래 똑같은 신성력을 가진 존재는 없으니까"
"병의 내용물은 얼마든지 훔쳐낼 수 있지만 에린의 하늘아래 똑같은 신성력을 가진 존재는 없으니까"
"고순도로 농축되어 만들어진 자기자신의 신성력을 독약으로 쓴다니 그야말로 어금니에서 흘러나오는 독액과 같은 발상입니다"
'엘베드의 문장아래 부끄럽지 않은 해결책이라 생각하는데"
두 톨비쉬는 그것이 마치 술잔이라도 되는것 마냥 병을 부딪쳤다.
병은 그저 한잔의 성수였다. 진짜 톨비쉬가 병을 들이킨다면 그것은 그저 자기자신의 신성력을 돌려받은것일뿐, 하지만 이능으로 만들어진 복제에게는 치명적인 독약. 톨비쉬는 병을 입에 닿게하기전 잠시 맞은편의 톨비쉬를 응시했다. 저쪽의 톨비쉬도 병을 들이키지 않은채 마주오는 시선에 눈을 맞추었다.
"만약에 말입니다. 아주 만약에 제가 가짜여서 그 병이 진짜 독약이라면 어떻게 하실겁니까?"
"지금 자백하는건가?"
"당신에게 묻는겁니다 만약 당신이 가짜여서 이 약이 가짜라면요? 그럼 둘 다 죽는것 아닙니까"
"손안에 신성불꽃은 꺼트리고 그런 말을 했으면 좋겠군. 마치 생각도 안해본것처럼 연기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속이 안좋아지는 느낌이야"
"당신에게 묻는겁니다 만약 당신이 가짜여서 이 약이 가짜라면요? 그럼 둘 다 죽는것 아닙니까"
"손안에 신성불꽃은 꺼트리고 그런 말을 했으면 좋겠군. 마치 생각도 안해본것처럼 연기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속이 안좋아지는 느낌이야"
"저도 제 얼굴이 거울도 아닌곳에서 움직이는 모습이 기분나쁩니다."
톨비쉬는 투덜거리는 얼굴로 고개를 내저으며 병안으로 신성력을 흘려넣었다.
은청색으로 타오르는 신성한 불꽃이 병안의 액체를 불꽃으로 바꾸어놓으며 아름답게 타올랐다.
마시는 불꽃이라, 둘중 하나가 죽어나가야하는 살벌한 결과를 제외하고서는 퍽이나 운치있는 음료였다.
맞은 편의 톨비쉬도 불꽃이 피어오르는 병을 들어보였다. 서로의 병에 담긴것이 같은 신성력인것을 확인한 톨비쉬들이 병을 들어올렸다.
"누가 남게 되더라도,"
"영원히 별의 곁을 지키는 방패가 되어"
톨비쉬는 불꽃을 입안으로 흘려넣으며 눈을 감았다.
누구도 다치지 않았고, 누구도 혼란을 겪지 않았다. 누가 이런일을 만들었는지는 묻지도 않았으며 서로가 자신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하나여야 하는 존재가 둘이 되었기에 시시비비를 가려낸것일뿐.
만약 다른방법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내고 잘 분류한다면 전력으로 써먹을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지 않은것은 아니였다. 얼마나 시간이 걸리든 자원이 소모되든 숙련된 알반의 정식기사가 공으로 생겨나는 일이였다. 그 태생이 가짜일지언정 아튼시미니를 따르는 마음과 힘은 진짜.
톨비쉬는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토해내었다. 맞은편에서도 똑같은 불꽃에 휩싸인 톨비쉬가 평안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같은 얼굴, 같은 표정. 아마 자신도 저와같은 표정으로 보고있깄지.
사실 존재를 부정하려는 사악한 존재를 마주쳤을때 정말로 자신이 침착하게 설득해서 이 병을 마시게 할 수 있을까 에대한 고민을 안해본것은 아니였다. 혹시 상대방도 같은 병을 내밀면 어찌할까, 봉인을 독특하게 만들까? 내용물만 바꿔치기 한 것은 아닐까.
수많은 고민과 보완속에서 그저 검으로 마주치면 금방알 수 있지 않을까하는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방문을 여는 또다른 자신을 보며 톨비쉬는 그리 나쁘지 않은 첫인상을 받았다. 그가 방에서 나왔기때문에 가능했던 아튼시미니의 기적이 아닐까. 방문을 여는 순간 행복감이 가시지 않은 자신의 얼굴이 짜증스럽게 문을 여는것을 보며 톨비쉬는 검을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빼었다.
언제 어디서 복제된것인지 모를 또다른 자신은 톨비쉬가 급하게 임무를 나가게 되느라 생겼던 공백을 훌륭하게 매꿔주었다. 아마도 실망하겠지. 그렇게 한숨을 쉬며 돌아온 방안에서 낯선이의 인기척을 느꼈던 톨비쉬는 문고리를 잡았을때의 살기를 떠올렸다. 자신의 방에 초대받는 독특한 경험을 또다시 해볼 수는 있을까.
환기되지 않은 방안에서는자신의 체향과 밀레시안의 향기가 동시에 감돌고 있었다. 그 떄의 불쾌함, 그때의 질투심, 그 서운함. 그러나 오늘 하루 즐거웠을까? 라고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만큼 밀레시안은 기분좋은 미소와 함께 잠들어있었다.
사랑받은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별의 만족스러움은 그의 질투심보다 큰 보상이였다. 아마도 행복한 휴일이였겠지. 그래서 톨비쉬는 약속했던 병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와 건배를 나누었다. 이름모를 그림자는 새벽빛과 같은 창백한 불꽃속에서 산산히 흩어져 내리며 별의 이름을 불렀다.
".....톨비쉬"
밀레시안이 손을 뻗으며 옆에서 자고있어야할 톨비쉬를 찾아 손을 더듬거렸다. 테이블에 앉아있던 톨비쉬가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로 다가갔다.
"밀레시안"
"음...."
더 아끼고, 더 사랑하리라. 사라진 그림자의 안타까움이 자신의 마음속에 스며들지 않도록.
톨비쉬에게는 하루늦어진 휴가이지만 밀레시안에게 내일도 휴가라고 말한다면 아마 뛸듯이 기뻐할것이 분명했다. 오늘보다 더 행복한 하루를 만들어 그림자를 지워버리자. 살아남은 톨비쉬는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은 입술을 밀레의 손끝에 갖다대었다.
"밀레시안"
천천히 갑옷을 벗은 톨비쉬가 침대안으로 들어가 따끈따끈해진 연인의 몸을 끌어안았다. 차갑게 식은 톨비쉬의 체온이 낯선지 밀레시안은 잠시 인상을 찡그리다가 살짝 눈을떠 상대방을 확인헀다.
"...."
다시 감기는 눈동자에 스치는 안도감이 체온을 기대어 온다.
"잘자게, 나의 별"
톨비쉬가 늦은 안식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