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오블완

 

 

메브 그라임즈는 코가르나흐 신문사의 평범한 신입기자였다.
인맥을 기대하기도 힘든 작은 마을출신에 따로 대단한 재능이 있어 혼자서 울라대륙을 돌아다닐만한 인재도 아니었다.
그나마 뛰어난 부분을 손꼽자면 타고난 말솜씨와 눈썰미 정도. 그리고 초급학교에서 갈고닦은 작문실력이 있긴 했지만 글솜씨만 두고보자면 그녀의 동기, 시우반이 더 깔끔하고 명료한 문체를 자랑하고 있어 그녀가 자신감 있게 내놓을 것이 되지 못했다.

 

더욱이 시우반은 혼자서 오스나사일을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듀얼건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침착하게 거리를 두고 응전하는 정도였지만 아무런 무기를 다루지 못하는 그녀와 달리 시우반은 어디든 자유롭게 취재를 떠날 수 있었고, 또 어느정도 위험을 감수하고 더 깊은 취재를 지속할 수 있었다.

이렇다보니 메브라고해서 무기를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요즘은 실린더도 잘 나온다고하여 일부러 탈틴까지 찾아가보기도 했고, 몇번을 가르쳐줘도 결정 넣는 것조차 불안해보이는 그녀를 위해 추천된 ‘던지면 무엇이든 해결되는 마법의 파란 솔방울’을 구매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메브는 그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망손이었다.
그동안 수도없이 연금술에 관련된 기사를 교열했던 그녀였지만 실린더 안에 원소의 결정을 밀어넣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던지면 무엇이든 해결된다던 ‘마법의 파란 솔방울’은 또 얼마나 강력한지, 메브는 자기 발치 바로 앞에 자라난 성인 남성만한 얼음 석순을 보고 깜짝 놀라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만약 거리 조절을 잘못하여 발밑에 떨어트렸다면, 혹은 어딘가에 잘못 튕겨져 나오 그녀에게 다시 굴러들어왔다면?

 

‘저 얼음에 꿰뚫리는 것은 지나가던 회색 도시쥐가 아니라 내가 되지 않을까?’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 상품에 쓰여져 있던 ‘무엇’이란 그림자 세계의 중, 고급미션을 말하는 것이었다.
메브는 자신은 호신용품을 원했지 전쟁용품을 원한것은 아니라며 서둘러 판매처를 찾아가 구매한 모든 제품을 반품했다.

메브에게 ‘던지면 무엇이든 해결되는 마법의 파란 솔방울’을 판 개인상점 상인은 메브에게 이런식으로 나오면 곤란하다며 반품을 거절하려 했다.
그러나 무슨 생각인지 상인은 갑자기 말을 바꿔 빠르게 모든 금액을 환불해 준 뒤 서둘러 가방을 챙겨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가 허둥지둥 뛰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메브는 마침 그녀의 옆에서 똑같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상인을 응시하던 버섯머리의 소년을 보고 멋쩍은듯 웃어버렸다.
소년은 방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손을 흔들고 광장 뒤에 있는 언덕위로 올라갔다. 메브는 어쩐지 그 손인사에 맞춰 그 자리에 떠나야할 것 같은 분위기에 휩쓸려 마침 성문 안으로 들어오는 타라행 마차에 올라탔다.

침대에 걸터 앉고 나서야 메브는 베개를 내리치며 뒤늦은 깨달음을 토해냈다.

 

“전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어!!”

 

이제 신입이라는 딱지도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 시기.
그동안 동기 시우반은 승승장구하여 몇번이고 편집장님의 칭찬을 받아 지면에 상당한 분량의 기사를 실었다.
그에 반해 메브가 취재한 기사는 고작해야 타라의 고양이와 선행, 길거리 강아지 best 10, 가을철 꽃사슴을 조심하세요! 같은 쓸데 없는 기사들뿐.

모처럼 인터뷰실력을 발휘 할 수도 없는 동물들 대상의 기사만 잔뜩이라 그녀는 기사를 들고갈 때마다 되려 비웃음을 사기만 했었다.
그러면 사람을 대상으로 취재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힘들었다. 불가능은 아니었지만 이 까칠한 타라라는 도시 내에서 아무런 인맥도 지연도 없는 그녀의 인터뷰실력은 빚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차라리 우연히 사고라도 목격하여 그 사고 목격자를 인터뷰하는 것일면 모를까, 타라의 높으신, 귀하신, 한 자리 하시는 도시 사람들께서는 이런 촌스러운 시골출신 여성기자의 인터뷰 신청따위 숲속에 굴러다니는 위습만도 못한 소리처럼 무시하는게 일상이었던 것이다.

메브는 이번에도 허탕쳐버린 휴가날을 아까워하며 양 주먹을 휘둘러 베개를 번갈아 내리찍었다.

시우반도 짜증이나고 이 싸가지없는 타라의 시민들도 짜증났다. 은근히 눈치주는 편집장이 미웠다.
자신이 힘들게 취재한 길거리 강아지 best 10의 1위와 6위를 바꿔 기재한 미술기자도 짜증났다.

얼마나 힘들게 수집한 선호도 조사 결과였는데. 잘못 랭크된 강아지 기사가 나간 날, 누군가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기사였으나 사실 그 기사는 펜카스트 대주교가 특별히 그녀를 불러 의뢰한 비밀의뢰 기사였다.
고양이들을 쫓아다니며 선행하는 이들에 대한 기사를 썼던 것이 매우 인상깊었다며 이번에는 보다 많은 이들에게 선행을 홍보하고자 길거리 강아지들의 귀여운 포인트를 일목요연하게 나누어 기사화 해달라는 부탁이었는데…

내심 랭킹 1위 강아지를 추천하기까지 했던 터라 메브는 일찌감치 그 까만주둥이의 하얀 입술이 매력포인트인 갈색 강아지를 랭크 1위에 올려놓고 기사를 썼으나 사진이 모든 것을 망치고 말았다.
당연하지만 자신이 아끼는 강아지가 랭크 6위에 기록된 것을 발견한 펜카스트 대주교는 매우 싸늘한 눈으로 메브를 바라보다 말없이 교황청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랭크 1위가 된 강아지를 입양한 사람이 펜카스트 대주교의 유명한 심복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과거의 불운을 곱씹으며 베개의 먼지를 털어내던 메브는 푹신하게 되살아난 베개에 다시 얼굴을 파묻고는 중얼거렸다.

 

“짜증나… 나도 하늘에서 뚝 하고 행운이 떨어졌으면 좋겠어. 마법같은 사건이라던가, 갑자기 배송된 붉은 밀랍의 초대장이라던가, 알지도 못하는 친척의 유산이라던가, 밀레시안이라던가, 밀레시안이라던가, 어디서 아는 밀레시안이 생겨난다던가.”

 

메브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돌아누우며 말했다.

 

“요즘 그 뭐냐, 이단 성직자들이 많이 돌아다닌다며. 그런데 왜 내 앞에는 하나도 안나타나? 뭐 원수라도 졌어?”



그리고 다음 날, 모든 소원이 이뤄졌다.
메브는 마지막 한숨과 함께 내뱉었던 소원을 후회할 수 밖에 없었다.






메브가 받은 초대장은 어느 귀족가문의 저택이었다.

그곳은 메브는 자신이 여기에 초대받은 것이 맞느냐고 수십번도 더 되물을 정도의 대부호의 저택으로 직위와는 별개로 다양한 유력자들과 상당히 긴밀한 관계를 맺은 가문이었다.

가문의 이름은 스카한, 신비와 영감으로 가득찬 예술가의 가문이었으며 그중 가장 유명한 이는 다름아닌 생전에 ‘왕립미술협회’에서 천재로 칭송받았던 일다하흐 스카한이었다.
왕성에도 여러점의 작품을 남겼던 그는 명예 보다 많은 사람들과 행복을 공유하고 싶다는 이유로 왕성으로 떠나 라이미라크 교단으로 향했으며 그곳에서 캔버스가 아닌 성벽에 성화를 그리는 봉사활동을 하며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그림이 멀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라미이라크 교단은 그런 그를 매우 사랑했다.
그 사랑이 어느정도였냐하면 벽에 그린 성화와 똑같아야 한다는 조건으로 그린 그림을 바로 보물고에 보관하였으며, 그와 또 별개로 성화를 그리는 그의 모습을(곁에는 일다하흐의 동료, 아르기드와 함께했던 귀엽고 성실한 어린이 봉사자들도 있었다.) 초상화로 남길 정도였다.

 

하지만 그토록 숭고하던 젊은 예술가는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럽게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자세한 사항은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메브는 지금도 일다하흐 스카한의 사인을 알지 못했다.
언뜻 들었을 때는 뱃놀이중에 사고가 발생했다고도 들었고, 또 어딘가에서는 배 위에서 일어난 끔찍한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린 것이라고도 들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는 사건이 공표되지 않을 리 없었기 떄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그의 죽음을 ‘사고’라고 칭하며 유감을 표하는 선에서 그쳤다.

더 자세하게 조사하려는 이들은 재능있는 조카의 죽음을 너무나도 슬퍼하여 가문의 문까지 닫아걸은 스카한 대부인의 분노를 직면해야했기에 보통의 용기와 뒷배가 없는 기자들은 스카한 가문 주변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메브가 자신이 향하는 곳이 ‘그' 스카한 가문의 저택이라는 것을 깨닫자 마자 넋을 놓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사교계에서 이제 완전히 이름을 감춘 스카한 가문이 나를 왜?'

 

다행스럽게도 메브가 불려가는 이유는 스카한 대부인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닌듯 했다.
만약 그녀가 부르는 것이었다면 그녀의 이름이 적혀있었을테니까.

그녀가 받아든 고급스러운 편지지에 적힌 이름은 ‘스카한’으로, 스카한 가문에서는 다름아닌 메브의 조모님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신지 오래였고, 그녀의 부모님은 그보다도 일찍 그녀를 조부모님께 맡긴 뒤 어디론가로 사라진 상태였다.

 

이렇다보니 스카한 가문에서는 다음 ‘그라임즈’를 찾아올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바로 타라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던 메브였다.
그들은 메브가 그라임즈의 성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마지막 직계가 자신이라는 증서까지 지참하여 이를 메브에게 ‘돌려주기’까지 했다.
마치 그녀가 먼저 자신이 그라임즈의 직계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서류를 보냈다는양 자연스러운 양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왜?'



메브는 그리 부질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왜 스카한 가문에 불려가는지를 계속해서 추론해나갔다.

 

작위도 뭣도 없는 그라임즈의 늙은 노부부가 귀족가문 스카한과 무슨 연관이 있었을까.
나 몰래 빚이라도 졌던걸까?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마차와 마부까지 보낸 것이 퍽 정중해보였다.
그라임즈의 직계, 그 증서를 직접 가져올 정도로 빠른 일처리, 증명.
대를 이어서라도 무언가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 대상이 평민이 될 만한 일.

 

해답은 그녀가 지난밤에 빌었던 소원에 있었다.
이미 갑자기 배송된 붉은 밀랍의 초대장에서 예고되었지 않았던가.

 

“유산이요?”

“정확히는 이제 당신에게 넘어간 어떤 물건에 대한 소유권이지요.”

 

메브는 마법같은 일은 이미 충분하니 평범하게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간절하게 빌며 응접실에 마주앉은 집사장이 내미는 상자를 받아들었다.
그 안에 든 것은 다름아닌 거울이었다. 들고다니기엔 조금 커보이지만 화장대 앞에 앉아 이리저리 비춰볼 때 쓰기 좋아보이는 커다란 손거울.

어떤 기술로 만들었는지 테두리가 하늘빛이 감도는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거울은 꼭 얼음을 빚어 만든 마법아이템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묘한 마력을 품고 있었다.
메브는 손잡이 끝과 거울 여기저기에 박힌 불투명한 우유빛 광물(보석은 아니었다)을 홀린듯이 바라보다가 다시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제가 이걸 관리해야한다고요? 아니 일다하흐 스카한의 유산을 제가 왜요?”

 

집사장은 대답 대신 정중한 손짓으로 거울이 들어있던 상자 아래에 들어있던 수첩을 가리켰다.


 

수첩은 선선대 스카한이 남긴 편지의 사본과 메브의 조모가 남긴 편지의 원본으로 이루어진 서신철이었다.
(아마도 선선대 스카한이 남긴 편지의 원본과 메브의 조모가 남긴 편지의 사본은 그들이 가진 또다른 서신철에 있을 것이다.)

편지는 메브의 조모가 새파랗게 어린 모험가였던 시절에 썼던 것으로 그녀가 스카한에게 고용되어 어떠한 ‘단체’를 쫓고 있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 단체가 이미 누군가의 추격을 받고 있어 양쪽을 신경쓰는 것이 매우 어렵고 고되고 불쾌하고 성가시다는 내용이었다.

스카한이 그런 그녀에게 추가적인 보수를 미리 지급하며 인내심을 가지기를 부탁했다.
스카한이 이미 누군가에게 추격을 받고 있던 ‘단체’를 굳이 따로 쫓고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가진 기물(忌物)이 원래는 스카한 가문의 기물(己物)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스카한 가문의 물건이 이상한 단체에게 넘어가 사악한 마법이 덧씌워졌다는 것.

 

스카한 가문은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이를 회수하려 했으나 이 ‘단체’는 보통 특별한 단체가 아니었다.
그들은 마치 라이미라크 교단의 고위급 사제들처럼, 혹은 사법에 손을 댄 블랙위저드처럼, 듣도보도 못한 이상한 마법을 사용하며 그들을 추격하는 족족 포위망에서 빠져나가곤 했다.
또 여의치 않을 때에는 잔혹한 수단으로 대응하는 것도 서슴치 않았으며 스카한은 이미 여러번의 실패를 경험한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이 ‘단체’에게는 너무 적이 많아 아직 ‘스카한’이 그들을 쫓는줄 모르고 있다는 말이었다.
스카한은 그들이 스카한의 기물을 이용한 사악한 물건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명예를 떨어트리기 전에,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들을 협박하기 전에 그 기물을 회수하고 싶어했다.

이를 위해서는 기물이 ‘단체’를 쫓는 의문의 추격자들의 손에 들어가서도, 혹은 다른 추격자들(라이미라크 교단이라던가, 친위대라던가, 그들과 원수진 기사단이라던가)그들의 손에 파괴되는 것도 막아야만했다.
이유는 이들이 가진 기이한 마법..? 같은 힘 때문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이미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한 적 있다던 스카한은 그들은 기물(忌物)에 비춘 그림자를 다시 현실화 시키는 마법을 가지고 있어 파괴는 되려 정화의 기회를 잃어버리는 악수라고 설명했다.

 

여기서부터 서신의 말을 반절도 이해하지 못한 메브는 남은 서신들을 빠르게 넘겨 결론부분만 훑어보았다.

요약하자면 메브의 조모, 선선대 그라임즈는 스카한의 ‘기물’을 되찾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기물은 방금전 메브가 직접 확인했다시피 ‘거울’이었고 그녀는 거울에 절대로 얼굴을 비추면 안된다는 스카한의 조언에 따라 거울을 상자에 넣은채 빠르게 그 현장을 빠져나오려 했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단체’를 쫓던 추격자들과 마주쳤다는 것이었다.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갑옷과 앰블럼을 단 기사들은 그녀에게 거울의 위험성을 설명하며 거울을 돌려줄 것을 부탁했다. 그라임즈는 그들의 ‘부탁’이 강한 자들이 내보이는 특유의 자만심, 혹은 여유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녀는 두번 고민할 것 없이 상자를 내려놓고 양 손을 들어올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당장 ‘부탁’을 해 보이는 기사는 가장 위험해 보였을뿐더러, 가장 빠릿해보이는 기사는 과하게 긴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라임즈는 그 기사가 만약 실수로 그녀의 목을 날리더라도 저 허술해보이는 기사가 난감한듯 웃으며 넘어갈 것이다라는 것에 자신의 의뢰금도 걸 수 있었다.

대신에 그라임즈는 제안을 던져보았다.

 

그 거울은 내가 쓸 것이 아닌 의뢰받은 물건이고, 그 의뢰자들은 그저 자신들의 물건이 사악하게 쓰이는 것을 막고싶은 것뿐이라고 사정을 털어놓은 것이다.

 

그라임즈의 말에 허술해보이는 기사는 전혀 믿지 않는다는듯 웃어보이고는 터벅터벅걸어가 상자안에 고이 감싼 거울을 꺼내들었다.
그라임즈가 위험을 경고하려하자 그는 그라임즈에게 괜찮다고 손짓하며 거울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거울은 그의 손에 어린 푸른 불꽃에 그슬리듯 은면을 새까맣게 물들인채 검은 액체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기사는 그 냄새나고 지독해보이는 액체를 무심하게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아, 정말로 스카한의 것이군요. 어쩐지 유난히 안정되어있다 했습니다.”

 

그는 손위로 넘쳐 흐르는 검은 액체들마저 모두 불태워버릴듯 또다시 푸른 화염을 한껏 피워올렸다.
그러자 불필요한 장식들이 모두 타들어가며 거울자체가 투명해지는듯한 변화가 일어났다.
남자는 다시 은색의 반사면을 가지게 된 거울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았다.
맑은 가을날의 창공처럼 옅은 색소의 푸른 눈이 거울 속에서 남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마치 타인을 보듯 그 거울속의 맺힌 상을 바라보다가 살짝 웃었다.
놀라울만큼 매력적인 얼굴이었으나 이상하게도 그라임즈는 그의 얼굴이 그리 설레지 않았다. 뭐랄까.. 신전의 조각상이 욷는 느낌? 아무리 섬세한 조각상도 결국 돌에 세겨진 웃음의 모양새에 불과 한 것마냥 그녀는 그의 웃음속에서 마르고 버석한 이질감을 느꼈다. 그러거나말거나, 기사는 거울은 다시 처음 상태 그대로 천으로 둘러맨 뒤 상자 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그 상자를 그라임즈에게 내밀며 말했다.



“스카한이라면 이 거울을 잘 보관할 수 있을겁니다. 가져가십시오.”

“하지만…”

“상부에는 내가 보고하도록 하지. 아무 문제 없을거라 약속하지.”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회에 놀라워하는 것도 잠시, 그라임즈가 재빨리 상자를 받아들었다.
다른 것을 생각하기 보다 그녀보다 더 놀란 기사들의 표정이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었고 그녀의 직감 또한 이것이 흔치 않은 기회라는 것을 속삭이고 있었다.

거울을 돌려준 기사는 마치 경계심 많은 길고양이같이 상자를 낚아채어 멀어지는 그라임즈를 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그라임즈는 몇번이고 뒤를 경계하며 혹시라도 그들이 마음을 바꿔 쫓아오지 않는지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기사들은 여전히 그 허술해보이는 기사에게 잡혀있었다. 그녀가 그 도시를 빠져나가 울레이드 숲에 몸을 숨길때까지도 말이다.

 

그라임즈가 혼란스러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스카한 편지를 통해 전달된 상기의 이야기에 당혹스러운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몇 차례에나 그녀가 보았던 ‘추격자들’의 외형적 특징을 물었고 그라임즈는 그 때마다 진절머리를 내며 그가 묻는 질문에 모두 대답했다.
나중에는 그녀 나름대로 기억에 남은 앰블럼의 모양을 그려 보냈는데 스카한은 그녀의 끔찍한 그림솜씨에 절망적인 반응을 내비치며 대체 뭘 그린 건지 ‘글자’로 설명해달라는 답장을 돌려보냈다.

마침내 그는 그라임즈가 그린 ‘붉은 해골’을 해석해낸 것에 자축하며 그녀가 했던 이야기들을 믿는다고 대답했다.

 

조모의 상황에 이입해서 읽고 있는 메브 입장에서 보기에도 정말 기가 쭉 빨려나가는듯한 고용주였다.
이후의 내용은 만나서 진행되었기에 남은 내용은 서신철 가장 마지막에 끼워진 계약서의 사본을 보고 유추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론은 간단헀다.

 

“쫄보…”

 

스카한은 ‘단체’보다 끈질기고 무서운 ‘추적자들’이 자신에게 순순히 거울을 돌려준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았다.
무엇보다 어떠한 당부나 경고가 없었다는 것을 믿지 못한듯 그는 그라임즈에게 함께 책임져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책임이 바로 지금의 상황이었다. 스카한은 이 거울을 ‘다룰 수 있을 만한사람’에게 계승하되 여의치 않으면 ‘그라임즈’에게 넘긴다고 계약서를 작성한 것이다.
메브 그라임즈의 조모, 트리오나 그라임즈는 진절머리나는 스카한에게서 벗어나고자 이를 받아들였고 보상으로 엄청난 금액을 받아갔다.

메브는 계약서에 쓰여진 그 금액에 비명을 질렀다.

 

“아니, 이게 공이 몇개야? 그럼 이 돈은 지금 다 어디갔어?”

 


범인은 메브의 증조부였다. 
트리오나 그라임즈가 젊은 날, 목숨을 걸고 모험가의 일을 해야했던 이유는 그녀의 아버지가 수많은 빚을 지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채 여전히 도박과 이상한 종교에 빠져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돈이라면.
트리오나는 아버지의 빚을 모두 갚고도 남을 금액에 기뻐하며 처음으로 미래를 꿈꾸었다.
우선 아버지와의 연을 끊을 것이고 그 절연금을 주고도 남은 돈으로는 그녀의 가게를 열 생각이었다.
그곳에서 조금만 더 돈을 모은다면 자그맣게 반지를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여태 자신의 빚 때문에 거절해왔던 엘가르에게 이번에는 자신이 먼저 용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아니지, 차라리 고백을 먼저하고 가게에서 함께 결혼자금을 모을까?

그러나 달디단 꿈은 거품처럼 꺼져버리며 그녀를 지옥같은 현실에 내동냉이 쳤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미 그녀가 많은 돈을 벌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서 딱 그 계약서만큼의 금액을 빚으로 불려놓은 것이다.
원한을 품지도 못하도록, 처음부터 네 분수는 그렇게 사는 것이라는 것처럼.

그는 절망하는 트리오나에게 덕분에 자신은 새 인생을 살 수 있게되었다며 그녀가 드디어 자신이 키워준 ‘값’을 치뤘다고 웃어보였다.
트리오나는 그에게 바다에, 아니 두번 다시 태어나지 못하도록 명계의 바다에 빠져 죽어버리라고 소리질렀다.
그러나 그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 열매는 나에게 영생을 줄거야. 그러니 트리비나. 너나 이 지긋지긋한 인간의 삶에 고통받으며 살아가렴."

트리오나는 자신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이가 유유히 손을 흔들며 집을 나가는 모습을 보며 실성한듯 웃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지독했다.
집안의 모든 가구, 식기들은 이미 다 팔아넘겨졌으며, 팔지 못한 것들은 쓰레기를 모아두었다며 화풀이를 하듯 부숴놓았다. 폐허였다. 인생도, 미래도.
그렇게 절망하고 또 절망하여 이제는 그냥 죽는게 더 편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누군가 그녀의 집 앞에 나타났다.

누구? 이번에는 또 뭐야?
엘가르였다. 그는 다시 한번 그녀의 아버지가 마을에 나타났다는 소식에 놀라 달려온 상태였다.
그는 아직도 헉헉거리는 몸을 애써 억누르며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트리오나는 그의 손을 밀어낼 기운도 없어 가만히 그의 품에 끌어안겼다. 마치 줄이 끊어진 인형을 끌어당기는 것 마냥, 그 몸은 딱딱하고 차가웠다.
엘가르는 그런 그녀가 가여워 물기어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아무것도 없다, 그치?”

트리오나는 멍하니 그 말을 듣고 있다 왈칵 솟아나오는 눈물로 뺨을 적셨다.

“그러니까 이제 모두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그것은 그녀가 그를 거절했을 때 했던 말이었다. 

자신은 없는 것조차 아니라고, 오히려 마이너스라고.
아무리 아무리 쏟아부어도 수렁으로 빠질뿐인 이 인생에 그 누구도 함께하게하지 않았다던 트리오나에게 그는 드디어 0이라는 출발점이 주어졌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괜찮을거라고? 아니, 괜찮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여기에 있었다.
엘가르는 그녀의 곁에 여전히 자신이 있음을 속삭이고 또 속삭였다.

그렇게 그의 온기가 전해져 굳었던 몸이 풀리는 순간, 트리오나는 진흙 늪 위로 드리워진 부표를 잡는 조난자처럼 그를 끌어안으며 물었다.

“내가…띠띠띠띠띠띠-

 





 

“잠깐, 오늘 며칠이지?”

 

메브는 편지는 커녕 할머니에게서 들어본 적도 없는 증조할아버지의 이야기와 할아버지의 로맨스치사량 프로포즈이야기 속에서 화들짝 놀라 깨어나며 입가를 훔쳤다.
다행스럽게도 침이 묻어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내린 팔이 책상에 부딪치며 그녀가 책상에서 서신철을 읽다가 잠들었다는 현실을 상기시켜주었고 아직도 울리고 있는 알람시계가 그녀에게 오늘이 출근날임을 알려오고 있었다.

 

큰일이었다.
이미 휴가 다음날 스카한 가문에 다녀오느라 하루 더 유급휴가를 사용했는데 그 다음날인 오늘 지각을 한다?
메브는 불편한 자세로 잠들었던 탓에 서로 다른 결의 방향으로 쪼개지는듯한 허리와 엉덩이를 부여잡고 다급히 욕실로 뛰어들어갔다.

이후 사투를 벌이는듯한 단장시간이 지나고 지각 3분전, 그녀는 헉헉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책상 앞에 머리를 박을 수 있었다.
옆자리의 동기, 시우반이 그녀를 쓰레기보듯 내려다보는 시선조차 느껴지지 않을만큼 급박한 아침이었다.

 

메브는 문득 자신이 엄청나게 중요한 거울을 아무렇게나 방치해놓고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자신의 방 창문이 열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였다.
그 낡은 공용아파트에, 보안도 자물쇠 하나가 전부인 도둑들어도 재수없었구나로 하고 넘어가야하는 방의 책상 한가운데에, 저렇게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나갔었다니.

그녀는 뒤늦게 사색이되어 계단을 두세칸씩올라가 다급히 방문을 열었다.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책상 앞에 다가가 상자를 열때까지, 메브는 자신이 숨을 조차 못내쉬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거울이 멀쩡히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나서야 그녀는 자리에 주저앉으며 뱃속 깊은 곳에서 끓어나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대체 뭐냐고.. 왜 이런걸 준거냐고..”

 

그리고 그 말과 동시에 메브는 책상 앞에 주저앉은 자세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상자속의 거울에서 규칙적인 숨소리에 호응하듯 규칙적인 빛이 뿜어져나오다 줄어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스카한이 그라임즈에게 이 거울을 넘긴 까닭은 거울이 가진 엄청난 힘 때문이었다.
본디 정령의 눈물을 섞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이 거울은 사람의 진실된 모습을 비추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표현하니 어쩐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스카한이 가지고 있는 마법의 거울 중에서는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속마음과 다른 표정을 지을 경우 속마음에 기반한 표정을 보여주는 정도의 힘.
그마저도 상대의 속마음을 파헤치는 것이 아닌 스스로에게 깨닫게 끔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는 용도로 였기 때문에 유용하게 사용하기는 힘들다는게 당시 역시 스카한들의 생각이었다.
그렇다보니 거울은 자연스럽게 다른 마법의 거울들보다 소홀하게 관리될 수 밖에 없었고 어느 대에 이르러서는 이 거울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렇게 잊혀진 거울이 이것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최초도 아니었다.

그들이 집안의 몇몇 거울들이 사라진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세간에 ‘거울’에 관련된 이단자들의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들의 이름이 스카한(scáthán, 거울)이었던 만큼 스카한들은 당연히 ‘거울’에 관련한 수상쩍은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세상에는 아주 많은 거울이 있고, 그중에는 조금 많은 마법의 거울이 있으며, 그 중 또 몇몇 개에는 소문처럼 바라보기만해도 저주에 걸리거나 바라보기만해도 생명력을 빨리는 것, 바라보기만해도 홀려버리는 거울이 있을 수 있었겠지만 그중에 낯익은 모양새에 낯익은 능력의 거울이 있다면 제아무리 나태한 스카한들이라 하더라도 문득 자신들의 창고를 돌아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니지, 아니지. 우리에게 들여다보면 볼 수록 늙어지는 거울이 있지만 그게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거울이라고는 할 수 없잖아? 그리고 바라보면 일시적으로 홀려버리는 거울은 있지만 그게 영혼을 빼앗는 정도의 거울도 아니고. 진심을 보게해주는 거울은 있지만 그게 고민을 해결해주는 거울은 아닌…!!”

“알았으니까 그만 변명해. 근데 능력과 별개로 일단 손잡이부터 테두리 장식까지 모두 일치하잖아. 듣자하니 사이즈도 얼추 비슷한 것 같던데”

스카한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그리고 라이미라크 교단의 채근에 못이겨 창고를 확인했다. 그리고 몇십년째 정리한번 없이 아무렇게나 방치한 거울의 방에 생각보다 많은 상자가 비어있는 것을 보고(아마 꺼내서 어디서 한번씩 쓰고 제 상자에 안 돌려 놓은 것이다.) 등 뒤가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부랴부랴 창고를 정리하여 모든 거울들을 정해진 위치와 상자에 돌려놓은 뒤 숫자를 헤아렸다.

응, 세 박스 비어.

스카한은 빼도박도 못하는 빈 상자 앞에서 소리없이 절규했다.
그 때부터 그들은 거울을 빼돌린 친족을 찾아내는 것은 물론 사라진 거울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번 라이미라크 교단의 성전기사단의 도움을 요청한 적 있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그 믿음, 성전, 파괴, 정화의 기사들은 이단의 집회현장에서 거울들을 발견하자 삿된 것이라며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거울을 부숴버린 것이다.

당연하지만 부숴진 거울중에는 스카한의 거울도 포함되어 있었다.
성전기사단은 부서진 거울을 조각조차 주워가지 못하도록 잘근잘근 밟으며 돌아다니고는 이 모든 것이 라이미라크 님의 뜻이라며 사색이 되어 얼어붙은 스카한들을 위로했다.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었다.
아니, 오해하지 마시길. 이건 그들의 신앙심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무식한 행동이 라이미라크님의 뜻일 수가 없다는 말이지.
왜냐하면 이 사건 이후의 ‘거울’의 단체놈들이 그들이 분명 성전기사단의 손에, 그리고 발 아래서 두번세번 확실하게 부순 거울을 다시 들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거울과 마법에 능한 스카한들은 혹시 다른 거울이 유출된 적 있냐고 물어오는 성전기사단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이번에는 제대로 빼앗아온 ‘부서졌던 거울’을 관찰했다.
그리고 그 거울들은 진짜가 아닌 은판 위에 투영된 ‘그림자’인 것 같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이단의 신성이 이 그림자를 실제할 수 있게 만들었고 그 결과물은 진짜와 다름이 없었다.
이는 다시말해서 그들이 부서진 무서운 능력을 가진 거울들을 무한하게 복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원본이 이미 부숴졌다 하더라도 의미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정말 해결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악몽인걸까?
아니었다. 복제된 거울은 어디까지나 ‘진짜와 다름이 없는’것이지 ‘진짜’가 아니었다. 
동시에 이는 결국 진짜가 있어야지만 복사체 또한 존재할 수 있었음을 의미했다. 애초에 세상 모든 저주와 마법이 왜 그렇게나 ‘진짜’와 ‘본질’에 집작하겠는가.
처음부터 올바른 해답은 거울을 부수는 게 아닌 회수하여 이를 정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이 마법과 신학에 무지한 이들이 아니라면, 그리고 라이미라크님이 저 이단들의 힘을 증강하도록 도와주고 싶으셨던게 아니라면.
그들이 경솔하게 거울을 부수는 것은 라이미라크 님의 뜻이 될 수도 없고 정당화 될 수도 없었다.

이렇다보니 스카한들은 성전기사단과 라이미라크 교단에 대한 믿음을 빠르게 처분하고 남은 거울이라도 제대로 되돌리고자 스스로 거울을 되찾기로 마음먹었다.
비밀리에 모험가들을 고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다. 본디 예술가, 연구가에 가까웠던 그들은 모험의 이야기는 좋아하지만 실무에는 약한 자들이었다.
그 결과, 그들은 몇 번의 실패를 겪고 몇 번의 방해를 받고, 또 몇 번의 도움과 경고를 동시에 얻은 끝에 잃어버린 세 거울중 가장 하찮고 별 특별한 능력이 없는 거울을 무려 ’정화된 상태’로 회수해오는 것에 성공했다.
심지어 이 성과는 그리 기대도 하지 않았던 어느 어린 여성 모험가가 이룬 것이기에 그들은 더욱더 이 행운에 기뻐했다.

딱 한 사람, 그 모험가를 고용한 시르셰 스카한만 제외하고.

거울이 무사히 돌아왔으나 시르셰 스카한은 그녀가 덤으로 얻어온 ‘정화’가 그리 달갑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정화가 가능한 이들은 손에 꼽았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집어든 그 자리에서 불꽃으로 정화가 가능하다면 '그들'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들'은 이미 스카한에게 몇 번 경고한 적 있는 적도 아군도 아닌 중간자(中間子)였다.

이미 스카한에게 더이상 관여하지 말고 물러서 있으라 말하던 그들이 이토록 살갑게 호의를 배풀었다면 (모험가의 말로는 한 기사의 독단인듯 하였으나 스카한이 경험한 그들의 체계상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이는 그들이 지금 보이는 것 이상의 먼 미래의 계획을 염두에 두고 움직였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가령 지금 이러한 행위같은 것.
스카한은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네 이름이 뭐지?”

그러자 스카한의 몸이 스러졌다.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는 소울스트림 너머에 펼쳐진 무한한 별들의 세계를 엿 보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거울은 꿈이라는 형태를 경유에 그에게 답을 들려주었다. 그들은 거짓된 표정을 걷어내고 진실된 표정을 보여주는 거울로 태어났다. 그렇기에 거울의 수도자(scáthán)들은 그들을 ‘진심을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이름붙였으나 이는 그들이 가진 본질을 표현하기에 조금 부족하다. 진실은 진실이고 진심은 진심이다. 진심은 분명 진실에 기반하는 것이나 세상의 모든 진심은 진실에 기반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를 보라, 우리는 수없이 비추고 비춰진 그림자를 통해 벼려졌으며 무한한 그림자 너머로 열린 통로를 통해 별의 바다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진실을 보여주는 거울이며 이 진실은 에린과 그 너머의 별에 바다에 기반한다.  우리는 그곳에 흩어진 수많은 별들의 기억을 포집하여 발광하게 되었으니 우리는 이제 무엇이든 대답할 수 있는 만화경이요 삼라만상을 비추는 창문이다. 동시에 더이상 우리는 거울에 머물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최고(最古)의 존재는 부족한 이름과 거짓된 도금 얼룩진 껍데기 를 닦아내어 우리의 운명을 꿰뚫어보았다. 그러니

 

자유로운(saoirse) 스카한, 
우리를 오색찬란한(ildathach)아이에게 주어라.
그리고 그 아이가 빛을 잃거든 사나운 자에게 갈 수 있도록 약속을 맺으라.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의 저주를 푸는 자가 올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주신이 빚어낸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모습을 불러내어 그와 계약했던 사나운 처녀가 제대로 전하지 못한 가장 단단한 믿음의 말을 전해주었다.

스카한당신이라면 이 거울을 잘 보관할 수 있을겁니다. 가져가십시오.”






꿈에서 깨어난 메브는 저도 모르게 가슴팍에 꼭 움켜쥔 양 손으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꼭 쥐어 누르며 언제부터 참았는지 모르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상자속에 엎어진 거울을 집어들고 천천히 그것을 뒤집어 보았다.

거울안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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