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즈밀레)별의 어항8

마비노기/별의 어항 2019. 5. 9. 03:02

그들이 두려워 하던 헤루인식 후폭풍이 날아온것은 습격당한 회의실이 본래의 용도로 되돌아갔을 즈음의 일이었다.

카즈윈은 쓸데없이 자신의 사생활에 관심을 보인 루나사외 11명, 그리고 아직 찾아내지 못한 a 명을 찾아내기 보다는 조금 더 근본적인 이유를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한가해서 그래. 카즈윈은 팀원들을 몰아치며 이런 쓸데없는 모임이 생겨난 원흉과 해결방법을 묶어 설명했다.

한가했기 때문에 눈이 돌아가고 한가했기 때문에 손이 놀게 되는 것이었다.

모든 과를 통틀어 가장 바빠야 하는 정보과인 루나사가 한가하다는 것은 사장이 너무 유능한 인력들을 많이 뽑았거나 다른 부서에서 루나사의 비범한 처리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카즈윈은 그동안 너무 칼퇴를 많이 했다는 것을 반성하며 솔선수범하여 루나사의 즐거운 일거리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헤루인식 야근의 시작이었다.

처음 시작은 근방에 있는 지역이었고 이따금씩 먼 지역을 다녀오기도 했다. 팀원들은 퇴근시간을 자르던 칼날이 자신들의 목을 겨누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다.

이따금씩 카즈윈의 무자비한 일처리 방식에 반발한 이들이 알반에게 항의하는 서신을 보내기도 했지만 알반의 사장은 가볍게 웃음소리로 대답했고 냉정하게 항의전화를 끊어버렸다.

그의 비밀측근이자 차세대 알반의 보좌관인 L대리도 헤루인의 방식이 조금 거칠긴 하다고 염려했지만 융통성이 충만한 알반의 사장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헤루인은 원래부터 마피아같은 부서야.. L대리는 총책임자가 그런 소리를 해도 되냐고 되물으려던 입을 다문채 침묵했다.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옛저녁에 체념한 사장은 쓸데없는 고민 말고 이 뒷처리를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잠시 눈을 감는 것으로 골치아픈 상념들을 전부 치워버린 L대리는 리프레쉬한 마음을 가득 담아 활짝 웃어보이며 물었다. 매수합시다. 사장은 웃었고 알반의 미래만큼이나 밝은 미소는 쌍으로 번져갔다.

그렇게 임시보좌관의 수첩에서 몇몇 전화번호가 지워졌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

아주 오래간만에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카즈윈은 씻는것도 뭔가를 마시는 것도 생각하지 않은채 곧장 안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거실이 텅 비워진 대신 베란다 구석에는 거실용 테이블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검은 천이 꼼꼼하게 덧씌워져 있긴 했지만 틈새사이로 빛이 새어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별의 어항은 여전히 그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이 분명했다.

카즈윈은 복잡한 이전신청을 통해 별의 어항 들고 옮기는 대신 치우는 대신 아예 거실테이블째로 옮기는 것을 선택했고 몇번인가의 경고메세지를 무시한 끝에 결국 어항을 거실에서 치워 버리는 것에 성공했다.

남들이 보기엔 지나치게 신경질적인 반응일지 몰라도 카즈윈은 정말이지 그 별이 꼴도보기도 싫은 상태였다.

카즈윈은 보기 싫은 이야기라면 안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두운 집에서 홀로 빛나는 별을 볼때면저도 모르게 핸드폰을 꺼내들기 일 수 였다.

 

카즈윈은 이따금씩 신발을 벗는것 조차 잊어버린채 어두운 현관에 우두커니 기대어 서서는 어둠속에서 홀로 빛나는 별을 보았다.

별처럼 스산하게 빛나는 핸드폰이 얼굴을 비출때면 그의 은청색 눈동자는 부지런히 움직였고 이는 어항의 불빛이 꺼질때까지 계속되었다.

 

어항속의 별은 언제나 혼자였듯이 그 별에 떨어진 밀레시안 또한 혼자였다.

크리스텔을 쫓는 포워르의 추적자를 처치할때도, 검은 통행증을 들고 찾아간 바리던전의 지하 통로를 열어내었을때도.

황량함과 죽음의 냄새가 가득한 티르 나 노이에 도착했을 때조차 밀레시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이러한 변화는 티르코네일에 처음 아르바이트를 배워나가던 시절 곧잘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모습과는 정반대되는 모습이었다.

밀레시안은 마치 스스로에게 사망판정을 내린 것 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도우갈이라는 새로운 인물과 만났을 때는 그나마 입을 열어야 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곳이 티르 나 노이 였던 그것조차 아니었던 여신을 만나야하는 밀레시안의 운명은 바뀌지 않았다.

아니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어. 카즈윈은 밀레시안의 섣부른 판단을 비난했지만 인간을 위해 제 몸을 돌로 봉인하기까지한 여신이었다.

그 봉인이 자신의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로 지금과 같이 마신에게 붙잡히는 위험을 초래했어도.

여신은 여전히 에린을 염려했고 누군가 인간들을 구해내기를 희망했다.

그런 여신의 앞에 낙원의 힘을 품은 이 세계의 영혼이 나타난다면 어떤 반응을 내보일까.

밀레시안은 산 채로 돌이되는 악몽에 몸서리 치다 깨어나고 돌이 된 자신의 육체가 조각조각 부서지는 꿈에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불사가 아닌 불멸이었던 까닭에, 밀레시안은 그 누구보다도 처절하게 죽음을 두려워했다.

 

카즈윈은 밀레시안이 가진 불멸이나 영원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이 원래부터 밀레시안에게 속해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헤루인의 눈으로 보는 밀레시안은 평범한 사람이었고 나약한 성정이었다.

적당히 모험을 즐기고 사람들과 교류하고 제 힘으로 스스로의 다리와 눈으로 어디까지, 무엇까지 볼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근성은 대단했으나 누군가를 상처입히는 것에는 재능이 없었다.

카즈윈은 처음 던전에 간 밀레시안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알고 있었고 처음 인간형 몬스터를 만났을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여행자들과 마찬가지로 무거운 장비를 기피하고 가볍고 다루기 쉬운 무기를 선호했던 밀레시안이 어떠한 이유로 브로드소드를 선택했는지, 그 날 띄워졌던 loading이라는 메세지창이 무슨 의미인지.

카즈윈은 아직도 자이언트 웜이라면 치를 떠는 밀레시안이 태연히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보며 이야기의 끝이 머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여신을 구하고 나면, 밀레시안은 여신이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스스로 제 목숨을 바칠 것이 분명했다.

밀레시안의 영혼은 이미 처절하게 고통받았고 그 누구의 이해도 구하지 못한채 쓸쓸하게 부서져내리고 있었다.

타르라크. 카즈윈은 마지막으로 밀레시안의 조언자에게 희망을 걸었지만 여신의 배신은 커녕 제발로 거닐었던 티르 나 노이의 진실조차 알아내지 못한 드루이드에게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녀석 제대로 아는게 하나도 없었네. 카즈윈은 입술을 삐두름하게 말아올리고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카즈윈의 움직임에 현관등 센서가 반응했지만 그것도 잠시뿐인 빛이었다. 안방의 문이 닫혔다.

 

밀레시안은 도우갈의 제안대로 이 버려진 세계를 조금 더 자세히 둘러보았다.

수상한 점이 많았지만 쉬이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버려진 세계의 마을은 티르코네일과 지나칠 정도로 흡사했고, 어떠한 인간도 이 땅에서 안식을 취하지 못했다.

그런 척박한 땅에서 홀로 살아가는 도우갈이 의심스러운 것은 당연했다. 도우갈은 무덤에서 내려오던 밀레시안이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깨닫고는 공허하게 비틀린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제 저도 베어내실 생각입니까? 도우갈은 당신은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 확신하며 절뚝거리는 발걸음으로 밀레시안에게 다가갔다. 좀비떼에게 물어뜯긴 상처에 혈흔이 선명했다.

도우갈은 밀레시안을 데려가 치료해주었고 해가 진 뒤엔 직접 땔감을 모아 불을 밝혀 주었다.

한참동안 캠프파이어의 불길을 바라보던 밀레시안은 왜요? 하고 뒤늦게 도우갈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불을 싫어하는 도우갈은 캠프파이어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짧고 불친절한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당신은 지나치게 선량합니다.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오랫동안 홀로 살아남아왔던, 인간인지 인간이 아닌지 모를 낯선 세계의 청년은 제 주변의 어둠을 불사르는 것처럼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웃었다.

선하지 않은 이의 마음이 그렇게까지 망가질리 없습니다.

밀레시안은 웃지 못했고 도우갈은 그런 밀레시안을 보며 낮은 웃음소리를 이어나갔다.

불을 밝힌 것치고는 지나치게 서늘한 밤이었다.

 

밀레시안은 도우갈의 치료에 의존하며 버려진 세계의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동쪽 목초지부터 남쪽 버려진 농작지까지, 밀레시안은 최대한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여신이 말한 다섯개의 마석에 관한 단서는 얻어낼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밀레시안의 몸에는 착실하게 부상이 쌓여만 갔고 도우갈은 끝내 진절머리를 내며 작작다쳐오라는 험한 말과 함께 밀레시안에게 마지막 붕대를 감아주었다.

밀레시안은 다치고싶어서 다치는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입을 우물거리면서도 일단 도우갈의 치료에 감사의 인사를 건내며 조심스럽게 붕대 재고에 대해 질문했다.

내가 에린에 돌아가서 물품을 조금 사올까요? 도우갈은 코웃음을 치며 밀레시안의 제안을 거절했다.

도우갈은 이 땅에 사는 것이 나와 당신만 있는게 아니라며 잊었습니까? 이곳은 마족의 땅입니다. 그런 곳에서 내가 어떻게 이런 물품들을 구했을까요? 하고 비뚤어진 미소를 지어보였다.

도우갈의 말대로 떨어진 물품들은 바로 다음날 원상복구 되었고 도우갈은 붕대가 모자라서 감지 못했던 반대쪽 팔에도 붕대를 감아주었다.

밀레시안은 마족과 도우갈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새 붕대를 바라보았다.

도우갈은 눈치를 살피는 밀레시안이 아니꼽다는 듯이 눈을 흘겼다.

차라리 저번처럼 살의등등한 눈으로 노려보지 그러십니까. 밀레시안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이번에는 북쪽 봉인된 설원으로 향했다.

그곳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이미 알면서도 밀레시안은 밤이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도우갈은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온 밀레시안을 내려다보며 묻지 않은 질문에 대답했다.

 

내 대답은 나도 모른다. 입니다. 나는 어떠한 이유로 그들에게 살려지고 있고 나는 그 이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못합니다. 나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눠본 당신이라면 내가 때때로 기묘한 이야기를 하거나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겠지요.

나는 내가 기억해낼 수 없는 무언가이며 이 땅의 최후의 생존자입니다. 그리고 이 땅의 포워르들은 나를 살려두기위해 약간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나는 쉽게 잠들지 않습니다. 자, 이제 답이 되었습니까?

밀레시안은 어둠속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도우갈의 표정을 살피려 애를 쓰며 소리내어 물었다.

하나 더 질문이 있어요. 도우갈은 턱끝을 까딱였다.

당신이 나에게 잘해 주는 이유는 ‘우리’가 같은 처지이기 때문인가요? 도우갈은 기가차다는 듯이 웃었지만 밀레시안은 미동없이 도우갈을 응시했다.

내가요? 당신에게? 도우갈은 사납게 되물었다.

그게 잘 해준겁니까? 그게 그렇게 마음에 들었어요?

당신은 마치 어디 감옥 같은 곳에라도 갇혔다 온 사람처럼 말하는 군요. 진정으로 갇혀있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도 알지 못하는 자유로운 여행자가. 신은 진정 나를 당신과 같은 범위 안에 묶일 수 있는 존재라고 보고 있는 겁니까?

그러나 이내 도우갈은 이러한 말로 밀레시안의 간절함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입을 다물고 조용히 밀레시안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평소와 같은 건조하고 메마른 눈빛이 아닌 짐승의 것에 가까운 날 선 눈빛이었다.

도우갈은 몇번인가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고 힘주어 어금니를 깨물었다.

건방진. 그가 말했다.

그는 스스로가 입을 움직이고 있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근원을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려 애를 쓰고 있었다.

그가 보이는 호의는, 그가 말하는 연민은. 밀레시안은 그것이 인간 대 인간으로 주고 받은 감정의 교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보다 상위의 존재와 하급자간의 대화.

형식만 남은 겉치레였으며 진실된 이름도 조차 주고받지 않은 이들의 맥락없는 대화였다.

도우갈은 계단 위에 서 있었고, 밀레시안은 광장이었던 폐허 아래 서 있었다. 그들의 시선차이는 명확했다.

도우갈은 밀레시안에게 종이뭉치 한장을 던져 주었다. 당신이 찾던 마석에 대한 위치입니다.

도우갈은 그것을 누구에게, 혹은 어디에서 찾았는지 말하지 않았다.

가십시오. 도우갈은 평소와 같이 돌아가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곳을 떠나라고 경고하지 않았다.

그것은 일방적인 통보였다.

나아갈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밀레시안이 조사하지 않은 장소는 이제 딱 한군데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밀레시안은 말없이 종이를 주워들고 알베이로 떠나갔다. 도망칠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카즈윈의 횡포아닌 횡포는 계속되었다.

루나사는 고통받았고 이에 대한 중재를 요청하기 위해 사장실로 도망쳤다.

헤루인이 너무 열심히 일을 합니다. 사장은 루나사의 비명을 즐겁게 곡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더군. 루나사는 복고양이같이 나른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 L대리를 돌아보았고 무언의 항의를 담아 발끝을 탁탁 두드렸다.

회사 안의 작은 회사와 융통성이 넘치시는 인자한 사장님. 그리고 옴팡뒤집어쓴 루나사.

루나사의 팀장은 선언했다. 전직하겠습니다. 사장은 차 향을 음미하며 되물었다. 어디로?

옥상 카페테리아로 갈겁니다. 오늘부터 저희 팀은 루 나사가 아니라 루 팡이라고 불러주십쇼.

사장은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런 나는 자네들이 탐정과인줄 알았는데.

루나사는 이죽거리며 대답하고는 손을 휘저었다. 원래 털어본 놈들이 범인도 더 잘찾는 겁니다. 모르셨습니까?

L대리는 아무런 대꾸없이 일어나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렸다.

조금 뒤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났고 어두워진 사장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먼저 소리를 낸 것은 톨비쉬였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는 조용히 양 손을 모아 턱을 기대었다. 갱신이 멈췄나?

루나사는 대답했다. 예.

톨비쉬는 한숨을 내쉬었고 곰곰히 생각을 더듬었다. 어디에서?

루나사는 대답했다. 아직 첫번째 입니다. 곧 끝물이긴 하지만요.

톨비쉬는 첫 걸음도 떼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라워 하며 눈썹을 찡그렸다. 하지만 곧 납득했다.

그렇지. 그랬지. 그 남자라면 가능했다. 그는 아주 신중했고 늘 조심스러웠다.

한걸음 물러서서 상황을 살피는 것에 익숙했고, 무심한척 하면서도 남들에게 휩쓸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것들에 집착했다.

마음을 준 것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위험을 마다하지 않았고 납득할 수 없는 결과 앞에서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도전자였으며 의심 하는 자, 스스로 답을 구하는 자.

톨비쉬는 맑은 찻찬을 내려다보다가 손을 내저었다.

루나사는 잠시 그런 톨비쉬의 정수리를 내려다 보았고 이내 말없이 고개를 숙여보인뒤 몸을 돌려 톨비쉬를 떠나갔다.

톨비쉬는 한참동안의 고민했고 이내 결론을 내렸다.

손을 뻗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한 톨비쉬는 귀찮다는 듯이 대답하는 목소리를 향해 즐겁게 물었다.

조카님. 다음 주부터 해외스케줄이었지? 그런데 네가 기대한 그 콘서트 티켓 예매날이 언제더라?  

 

며칠 후, L대리는 근무시간에도 불구하고 옥상 카페테리아로 올라갔다.

테이블에는 평소보다 진하게 탄 차가 놓여져 있었고 찻잔 옆에는 강렬한 레드 색상과 네가지 무늬의 패턴마크가 돋보이는 신시엘라크 L2(Limited Edition 2) 가 놓여져 있었다.

L대리는 느긋하게 차를 음미한 뒤 날카로운 눈으로 시계를 노려보았다.

57, 58, 59.. 화면이 깜빡이는 것은 단 한순간. L대리는 눈 깜짝 할 사이에 마우스를 움직였고 만족할만한 숫자가 결과 창에 떠올랐다.

생각보다 좀 밀리긴 했지만 이만하면 납득할 만한 순번이었다.

애초에 같은 업계에서 일하면 자기 연줄로 구하라고.

L대리는 이런 쓸데없는 일까지 시키는 사장이 원망스러웠지만 그가 말하는 그 연줄이 불행하게도 자신의 상사였고 그 상사의 밑에는 콘서트나 공연 티켓예매에 도가 튼 (그리고 아주 유능한) 젊은 사원이 하나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비밀 회의 참석도, 콘서트 티켓 예매도, 명백하게 부당한 업무외 지시라고 주장할 수도 있었지만 불쌍하고 가련한 정식사원에게는 참는 수 밖에 없었다.

L대리는 위아래로 이리저리 치이기만 하는 불쌍한 자신의 회사생활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며 다시 마우스를 붙잡았다.

사장이 명령한 특수 업무를 끝냈지만 아직 시간은 조금 남아있었다.

그는 남은 시간동안 느긋하게 웹서핑이나 즐겨야 겠다고 생각하며 찻주전자를 끌어당겼다.

찻주전자를 감싸고 있던 티코지를 벗겨내자 가장자리에 달린 다섯가지 색의 구슬장식을 다그락거리며 맑은 도자기 소리를 내었다.

찻잔에는 금방 따끈한 차가 채워졌고 르웰린은 오늘따라 각별한 차 향을 즐기며 손끝을 움직였다.

몇 번의 조작을 통해 르웰린의 노트북은 어느 기기와 연결되었고 곧 그 기기의 화면을 고스란히 르웰린의 모니터에 띄워보였다.

르웰린은 자신의 방, 항시 충전기에 연결되어있는 핸드폰의 어플을 마우스로 더블 클릭하며 새로 올라온 이야기를 열람했다.

어플의 이름은 ‘별의 어항’.

르웰린은 차를 홀짝이며 22번째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는 자신의 별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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