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카즈밀레)별의 어항 1
카즈윈은 지루했다.
늘 보던 방송의 재방송이 지루했고 멜로디의 첫소절만 들어도 지긋지긋한 광고음악이 지루했다.
리모컨을 이리저리 눌러보아도 그 채널이 그 채널일뿐.
카즈윈의 인내심이 줄어들어가는 만큼 텔레비전의 볼륨소리가 줄어들어갔다.
작게, 더 작게. 이윽고 방안에 다시금 침묵이 찾아왔을때 카즈윈은 나지막한 숨소리를 내며 리모컨을 떨어트렸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사실 카즈윈은 텔레비전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특별히 보고싶은 프로그램도 없었고 선호하는 연예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 말했다시피 그는 너무 지루했고 또 적적했다. 심심했다.
방안 가득 사람소리라도 깔리면 뭔가 달라질까 싶어 텔레비전을 켜 보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카즈윈은 소리없이 입만 벙긋거리는 화면을 바라보며 다시한번 리모컨 조작을 시도했다.
영화는 다를지도 몰라. 그러나 그의 기대는 불편하기 짝이없는 리모컨 조작방법앞에 무너졌고 어렵사리 찾아낸 영화 목록 앞에서 형편없이 구겨졌다. 생각보다 종류가 얼마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장, 구매, 예고편, 특별 인터뷰, 같은 포스터를 공유하는 동시에 다른 이름을 가진 프로그램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시험삼아 두어번 탭을 넘겨본다 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
검색 요령을 알고있는 사람이라면 최신영화 추천탭에서 벗어나 좀 더 편리한 검색화면으로 전환했겠지만 vod구매에 익숙치 않은 카즈윈은 성의없이 아래버튼을 연타할 뿐이었다.
결국 카즈윈은 몇 번 화면을 넘기지 않아 멈춰섰고 나가기 버튼으로 화면을 치우기보다는 종료버튼을 누르는 쪽을 선택했다.
텔레비전은 짧은 종료음과 동시에 꺼졌고 방안에는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사실 방안에서 가장 시끄러웠던 것이 텔레비전의 불빛이였으니 크게 달라질 것도 없는 변화였다.
달라진 것이 있었다면 카즈윈의 표정쯤? 카즈윈은 검게 변환 텔레비전 화면위에 비치는 멍한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무기력한 표정이 영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설령 그 것이 자신이 얼굴이라도, 혹은 자신이 얼굴이었기 때문에.
카즈윈은 가차없이 리모컨을 내던진 뒤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쩐지 피부에 달라붙는 공기조차 불쾌했다.
꿉꿉해진 공기과 가라앉은 기분을 전환하기에는 뜨거운 샤워가 제격이었다.
몸을 씻고 나온 카즈윈은 조금 더 뽀득뽀득해진 발소리를 내며 거실로 돌아왔다.
그가 샤워부스에 틀어박혀 있는동안 밖은 조금 어두워졌고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카즈윈은 수건으로 머리를 문지르며 철제 난간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오후 다섯시. 멍한 기분은 가셨지만 카즈윈은 아직도 심심했다. 이쯤되면 재방송이 아닌 본방송의 무언가를 볼 수 있지않을까..
그 무언가가 티비 프로그램일지 광고일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카즈윈은 9백 9십개의 채널중 하나는 흥미를 끌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발을 움직였다.
아직 물기가 다 마르지 않은 길쭉한 발끝에 내던졌던 리모컨이 걸렸다.
솜씨 좋게 리모컨을 끌어당긴 카즈윈은 텔레비전을 응시하며 가볍게 리모컨의 모서리를 밟기 시작했다. 꾹. 그리고 다시 꾹.
자그마한 고무버튼위에 올려진 엄지발가락이 섬세하게 꿈틀거리며 전원버튼을 비롯한 기타 용도모를 버튼을 눌렀고 카즈윈은 그 반응을 기다렸다. 꾹꾹. 꾹꾹꾹.
하지만 카즈윈의 마음과 달리 텔레비전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누르는 횟수가 늘어날 수록 카즈윈의 발등에는 어느새 굵직한 힘줄이 불거지고 있었다.
몇번인가의 실패가 반복되었고 몇번인가의 인내심의 분기점을 지났다.
카즈윈은 한참뒤에야 자신의 게으름을 탓하며 발끝을 거둬들였다.
그냥 손으로 하고 말지. 카즈윈은 작게 혀를 차며 리모컨으로 발걸음을 옮겨 허리를 숙였다.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흩어져내렸지만 카즈윈은 개의치 않아하며 리모컨을 털어내었다.
텔레비전의 전원이 켜진것은 그즈음의 일이었다. 허무한 결과였다.
아직 전원버튼을 누르지 않은 카즈윈은 타이밍 참 거지같다는 표정으로 화면을 노려보았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리모컨에 들어간 물기가 오작동을 일으켰다던가, 아니면 아까 누른 리모컨의 명령이 이제야 이행되었다던가.
카즈윈의 추측이 어떠한 것이었건 밝혀진 화면은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광고를 떠들어대고 있었다.
광고는 어항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텔레비전이 켜졌다는 것에 만족한 카즈윈은 마실것을 가지고 오기 위해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고는 '별의 어항'이라는 제품에 대한 설명을 떠들어대고 있었다.
광고에서 말하는 별의 어항은 일종의 과학실험장치에 가까웠다.
광고는 여러분의 몸 속에 별의 유지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여러분들은 모두 별의 아이들입니다. 라는 어디선가 유행했던 어느 과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되었고 별의 어항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를 관찰하세요! 라는 광고문구와 함께 전문적인 설명파트로 이어졌다.
광고라기 보다는 다큐, 굳이 분류하자면 페이크 다큐멘터리같은 느낌이었지만 카즈윈은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그 광고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외로 설명의 내용이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카즈윈은 냉장고에서 붉은 딱지가 붙은 맥주를 한 캔 꺼내들었고 나초칩 한봉지를 옆구리에 끼워넣었다.
맨살에 닿는 과자봉지의 느낌이 조금 불쾌했지만 손안에서 터져나오는 맥주 기포소리가 그 불쾌함을 씻은듯이 지워내었다.
카즈윈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거실에 돌아와 자리를 잡고 앉았고 티비소리를 조금 낮추었다.
가만, 내가 음소거를 풀었던가? 카즈윈의 머릿속에 잠시 의문이 스쳐지나갔지만 전원이 한번 꺼졌다가 켜졌으니 설정값이 리셋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카즈윈은 리모컨을 내려놓았고 봉지를 펼쳐 고소한 칩을 하나 입에 가져다 대었다.
어항에 관한 설명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풍으로 이어지는 어항에 대한 설명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무엇보다도 이 어항이 물고기를 키우는 용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카즈윈은 어항이라며, 물고기가 아니면 대체 왜? 하고 의문을 가졌지만 구태여 입밖으로 그 질문을 꺼내지는 않았다. 어차피 혼잣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광고 속 아이슈타인 풍의 과학자 노인은 목관악기와 같은 깊은 울림을 가진 목소리로 조곤조곤 그의 의문에 대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럼 당신은 궁금해하실겁니다. 어항인데 물고기를 기르지 않으면 무엇을 기르는 걸까.
카즈윈은 맥주캔을 홀짝였다. 그는 어느새 광고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 어항에서 기르는 것은 다름아닌 별입니다. 이 광고의 첫머리에 말했던 문구를 기억하십니까? 우리의 모두의 몸속에는 별의 일부가 들어있습니다. 우리들의 몸을 구성하는 원소 하나하나가 모두 우주로부터 온 것이지요 그중에서 DNA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인 인(P)이라는 것이 있는데.. 설명은 카즈윈의 맥주가 반캔 비워질 정도로 길게 이어졌다.
그가 습관적으로 입에 넣은 나초칩은 벌써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광고에는 아직도 전화번호 한줄 표시되지 않았다.
그래서 대체 그 별의 어항이라는 것을 어디서 사는건데.
카즈윈은 이제 슬슬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광고인지 다큐멘터리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혹시 요즘 광고는 36분동안 이어지나? 카즈윈은 편성표를 확인하기 위해 리모컨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광고의 분위기가 변화되었다.
진지한 과학자의 얼굴이 사라지고 쾌활한 나레이션, 조잡한 3D화면등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모든 구성이 얼마냐구요! 3만 9천 9백원 단돈 3만 9천 9백원에 이 모든 구성이 따라갑니다! 합성인것이 분명한 우주를 배경으로 분홍머리 소녀가 나타났다.
포니테일로 머리를 높게 묶은 작은 소녀는 노란 병아리빛 스커틀을 팔랑팔랑 휘날리며 화면을 깡총깡총 뛰어다니고 있었다. 정말 영문모를 화면이었다.
하지만 소녀는 전혀 개의치 않다는 표정으로 어항의 사용방법을 설명해나갔다.
어항의 사용방법은 간단했다. 저 약 4만원짜리 패키지에 따라가는 소울스트림이라는 용액을 가득 채우고 구매자의 피를 한방울 떨어트리면 저 어항안에 별이 생겨난다는 것이었다.
별.. 이라기보다는 크리스털 키우기 실험세트 아닐까? 카즈윈은 광고의 내용을 대부분 믿지 않았지만 흥미가 동하는 부분이 몇군데 존재했다. 어항과 연동되는 어플서비스가 바로 그 부분이었다.
광고속 소녀(소녀는 자신의 이름을 마리라고 소개했다.)는 어플을 통해 별에서 진행되는 영혼의 기록을 직접 살펴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조금 더 생생한 전달을 위해 어플에서 재생되는 기록은 누군가를 3인칭으로 관찰하는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로 연재되지만 크리스털(별)의 내부를 배경으로 매일 1일 연재되는 소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퍽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이쯤되면 주 제품이 소설이고 어항이 부록제품 아닐까? 카즈윈은 시험삼아 핸드폰을 꺼내들었고 텔레비전 화면에 띄워진 코드를 촬영했다.
코드를 읽어들인 핸드폰이 곧바로 숍으로 연결되자 이내 어플이 자동으로 다운로드 되었다.
카즈윈은 어플은 별다른 동의 없이 설치되는 것에 잠시 불안감을 느꼈지만 이내 화면에 떠오르는 문구를 보며 안심했다.
기기의 근처에서 '별의 어항'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새로 주문하시겠습니까? 카즈윈은 요즘 광고는 참 특이하게 진행한다고 생각하며 예 버튼을 눌렀다.
대부분의 구매 과정이 그러하듯 처음 구매하는 샵에서 입력해야 하는 정보는 한도 끝도 없었기 때문에 카즈윈은 구매가 진행되는 내내 텔레비전이 꺼져버렸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다.
3번째인가 주소를 다시 입력하고 2번의 구매인증만료화면을 새로고침하고 나서야 카즈윈은 겨우 주문을 끝낼 수 있었다.
핸드폰에 집중하는 동안 맥주는 미지근해졌고 나초칩는 바닥을 드러냈다.
카즈윈은 남은 맥주로 입안을 헹구며 리모컨을 들어올렸다.
나른한 손짓으로 리모컨을 누르자 언제 꺼진지 모를 텔레비전이 즉각 반응했다.
검정색 일색이었던 화면 가득 박장대소하는 연예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음소거된 화면이었기에 큰 소리는 울리지 않았지만 카즈윈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행하는 특유의 자막을 읽으며 어떤 배경의 상황인지를 곧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왜 갑자기 음소거가 되었지? 카즈윈은 혹시라도 내부에 물기가 남아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마음에 리모컨을 탁탁 내리치며 음소거를 해제했다.
파하하하 걸쭉한 웃음소리와 함께 수다스러운 자이언트의 목소리가 빠르게 이어져 나갔다.
카즈윈은 언짢은 표정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이보나를 바라보았다. 게스트와 자막때문에 예능프로그램인줄 알았는데 이보나의 음유캠프였던 모양이었다.
음악프로그램이라면 듣기에 나쁘지 않겠지. 텔레비전을 챙겨보지 않는 카즈윈도 그녀의 인터뷰나 음악선곡 센스가 좋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카즈윈은 리모컨을 내려놓았고 띵동 하고 울리는 핸드폰의 메세지를 확인했다.
별의 어항의 배송이 벌써 시작되었다는 메세지였다.
카즈윈은 다시금 시계를 확인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메세지를 삭제했다.
가끔 주말에도 도착하는 택배도 있는데 오후 늦게 출발하는 택배도 있겠지.
카즈윈은 택배에 대한 생각을 지워내며 수다스러운 악기장인 아트가 연구하는 론카도라 연주를 경청했다.
빗소리가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어항은 바로 다음날 아침에 도착했다. 진심이야? 카즈윈은 이른 아침부터 띵동거리는 초인종소리에 짜증스럽게 문을 열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확인절차도 없이 덩그러니 놓여져 버린 택배박스 하나뿐이었다.
어디 회사길래 서비스가 이모양인지 절로 눈쌀이 찌푸려졌지만 아침부터 이 무거운 택배를 배달해야했던 택배기사의 고충도 어느정도 이해가 가긴 했다.
어찌되었건 이 택배는 취급주의(유리)인 동시에 액체가 두병 분량 들어있는 까다로운 제품이었기 때문이었다.
카즈윈은 위태롭게 달칵거리는 유리소리와 출렁이는 액체소리를 동시에 들으며 택배박스를 집안으로 들여놓았다.
새로 받은 택배박스가 늘 그러하듯 카즈윈은 단숨에 박스를 개봉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혔지만 그뿐이었다.
카즈윈은 입다만 웃옷을 꿰어입고 뒤늦게 도착한 택배도착 알림 메세지를 지우며 신발을 구겨신었다.
아홉시가 되기도 전에 무슨 택배가 오는건지. 카즈윈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걸어내려가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카즈윈이 도착하는 동시에 무언가를 기다리던 택배트럭이 다급하게 주차장을 빠져나갔지만 카즈윈은 아무런 이질감도 눈치채지 못했다.
어찌되었거나 바쁜 아침이었다. 카즈윈은 서둘러 차에 올랐고 이내 택배에 대해서 잊어버렸다.
카즈윈이 집으로 돌아온 시각은 늦은 오후 시간이었다.
도어락이 잡기고 신발을 벗는 소리가 그나마 사람사는 집같은 소음을 내었지만 그것도 곧 그쳐들었다.
카즈윈은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가볍게 세안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 편한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어찌나 군더더기 없이 자연스럽고 완벽한 과정인지 집은 마치 현관과 화장실과 안방만이 전부인듯한 움직임이었다.
사실 부엌이라 하더라도 안주거리와 빈 맥주캔을 보관하는게 전부였고 거실은 가끔씩 구겨져 있는 용도가 전부였기에 틀린말은 아니었지만 카즈윈도 나름대로 집의 모든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를 테면 어제의 텔레비전 챌린지 정도.
하지만 어제 실패했다시피 텔레비전에도 취미가 없는 그에게 집은 거추장스럽고 쓸데없이 넓은 공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평소라면 그대로 안방에 틀어박혀 잠시 인터넷을 살펴보다가 잠들었을 카즈윈은 한손에 핸드폰을, 다른 한손에는 커터칼을 꼭 움켜쥔채 거실로 걸어나왔다.
거실에는 그가 아침에 올려두고 떠난 커다란 택배가 자리하고 있었다.
드르륵 소리를 내며 빠져나온 커터칼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상자를 단숨해 해체해내었다.
굳이 곡선을 그릴 필요가 있느냐고 묻느냐면 그냥 개인적인 습관, 카즈윈은 칼날을 집어 넣고 상자의 잔해를 치워내었다.
안에는 광고에서 보았던 어항과 소울스트림이라는 허접한 스티커가 붙어있는 플라스틱 병 두 개, 그리고 보증서가 붙어있었다.
무슨 보증서씩이나. 카즈윈은 쓸데없는 종이를 치워버리고는 네모난 어항을 꺼내들었다.
뚜껑과 바닥에는 자그마한 조명장치가 붙어있는 것을 확인한 카즈윈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구성품들을 둘러보았다.
물 두병과 부실해보이는 유리수조가 4만원. 카즈윈은 벌써부터 사기당한 것은 아닌가 의심하며 물병을 집어들었다.
허술해보이는 라벨과 달리 안에 들어있는 액체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향긋하고 신선한 냄새가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프롬 더 아발론.
카즈윈은 아발론이라는 지명이 어디인지 혹은 어느 회사인지 모르겠다며 계속해서 코를 킁킁거렸다.
어딘지 익숙한 향이 느껴지는데 도저히 설명할 수없는 친근감이었기 때문이었다.
한참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던 카즈윈은 물을 모두 수조에 쏟아넣고 수조의 뚜껑을 닫았다.
무슨 원리인지 모르지만 뚜껑을 닫아도 조명이 밝혀지지는 않았다.
혹시 베터리로 작동하는 걸까? 카즈윈은 스위치, 혹은 배터리를 넣는 위치를 알아두기 위해 수조덮개를 쓸어내렸다.
하지만 뚜껑은 매끈한 통짜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으로 어디하나 흠결이 보이지 않았다.
덮개 안쪽인가, 혹은 아래쪽? 한참동안 수조를 살펴보던 카즈윈은 다시 동봉된 구성품들을 살펴보았지만 이제 남은 물건은 보증서라는 이상한 종이 한장 뿐이었다.
알 수 없는 외국어로 적힌 보증서를 살펴보던 카즈윈은 문든 핸드폰의 진동이 울리는 것을 발견했다.
핸드폰의 화면에는 낯선 팝업창이 띄워져 있었다. 근처에 '별의 어항'이 있습니다. 연동하시겠습니까? 카즈윈은 수조를 흘끗 바라본뒤 예 버튼을 눌렀다. 무엇으로 인식하는거지..? 카즈윈은 뭔지 모르겠지만 핸드폰이 저절로 수조를 찾아낸 것을 신기하게 여기며 연동과정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팝업창에는 언 스마일 아이콘이 떠오르며 새로운 문구가 적혀져 있었다. 해당하는 '별의 어항'에서 영혼의 정보를 불러내지 못했습니다. 정보를 입력한뒤 다시 시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