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톨비밀레)장례식 (마비노기전력 60분연습)
눈을 뜬 곳은 새하얀 소울스트림이였다. 밀레시안은 조금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늘 변함없는 고요함과 평안합, 날개짓소리 조차 없는것은 조금 의아해할 일이였지만 아주 없던 일은 아니였기에 밀레시안은 그 사소한 차이점을 무시했다.
내가 죽었던가? 밀레시안은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며 스테이지의 가장자리로 물러섰다. 나오가 소환되는것을 기다리기 위한 일상적인 행동이였다.
살펴본 몸 어디에도 상처는 없었고 옷가지조차 헤어진 구석 하나 없이 깔끔한 상태였다.
생일도, 특별한 날도 아닌 밀레시안은 자신이 또 이상한 무언가를 주워먹었던건 아닌가 곰곰히 생각에 잠기었다.
그럴리는 없었다. 밀레시안은 지금 막 게이트에 돌아와 몸을 씻고 침대에 엎어진 참이였다. 아니 그랬었나? 짧은 의문이 스쳐지나갔지만 그런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밀레시안은 천천히 소울스트림을 둘러보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을 지워버렸다. 나는 침대에 있어. 일단 확실한 기억을 부여잡은 밀레시안이 그다음 단계를 떠올리기 위해 머리를 긁적였다
설마, 질식사? 그런 허망한 사인으로 죽었다는 밀레시안이 있었는지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하다가 1분이라도 빨리 나오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밀레시안의 눈에 이질적인 물건이 뛰어들어왔다.
거뭇하면서도 반짝이는 무언가. 밀레시안이 잠깐 주저앉았던 무릎을 짚고 일어나 스테이지의 중앙으로 다가갔다.
이런 물건이 있었던가, 싶은 밀레시안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중앙스테이지에 물건이 있으면 나오는 나오지 않는다. 이 새하얀 선반이 나오가 늦어지는 원인은 아닌지, 이 선반은 대체 어디서 나타난건지, 밀레시안은 처음보는 낯선 구조물의 주변을 뱅뱅 돌며 스테이지를 둘러보았다.
선반은 스테이지의 바닥에서 솟아나온듯 단단하게 고정되어 매듭의 중앙부분에 못박혀있었다.
아무리 용을써도 뽑히기는 커녕 흔들리지도 않는 선반에 밀레시안은 미심쩍는 눈으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스테이지 중앙에 나타난 선반위에는 밀레시안이 은행에 처박아뒀을것이 분명한 타우네스의 개량판, 검은 별이 한자루 놓여져 있었다. 검고 반짝거리는 짤막한 총신이 밀레시안의 눈에는 불길한 무언가로 느껴졌다. 밀레시안이 다시한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낯선물건인가요?"
아무도 없을것이라 생각했던 적막속에 낯익은 목소리가 뛰어들어왔다.
그러나, 이곳에 있으면 안되는 목소리. 밀레시안은 고개를 돌려 착각이 아닌 진짜 스테이지에 서 있는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꿈이다. 밀레시안은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꿈타령이라니, 너무하지 않습니까."
톨비쉬는 짐짓 서글픈척 검지손가락을 들어 눈밑을 쓸어내렸다. 눈물도 안나면서 우는시늉이라니 이건 분명 꿈이다. 밀레시안의 눈이 선반을 스쳐 바닥으로 떨어졌다. 톨비쉬의 한쪽손에는 듀얼건의 남은 한쪽이 쥐여져 있었다. 밀레시안은 그제서야 선반에 놓여진 검은 별 밑에 놓여진 쪽지를 발견하고서는 손을 뻗었다.
'누구하나가 죽지않으면 나가지 못하는 방'
기분나쁜 꿈. 밀레시안이 종이를 구겨버리듯 다시 접어 선반위에 던져놓자 톨비쉬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밀레시안에게 다가왔다. 그에게서 잘마른 장작의 향기가 느껴졌다. 밀레시안의 볼이 약간 뜨거워졌다.
"이게 꿈이라면 정말 기분나쁜 꿈일것 같습니다. 그렇죠?"
"이건 내 꿈이에요"
"아니라면?"
"꿈이여야해"
빙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밀레시안을 품속에 가둔 톨비쉬가 선반으로 손을 짚었다.
배꼽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가 밀레시안의 숨을 턱턱 막히도록 기도를 잡아끄는 느낌이였다. 그에게서 매마르고 건조한 바람이 느껴졌다. 밀레시안이 눈을 감았지만 앞에서 서성이는 톨비쉬의 기척은 지워지지 않았다. 짝을 만난 검은별이 실리엔 반응을 일으키며 재장전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밀레시안은 나쁜생각을 하지 않기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톨비쉬의 입술이 밀레시안에게 닿았다.
"계속 그렇게 눈을 감고 있을겁니까?"
"이제 그만해요"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요"
"당신이 여기 있을 수는 없어"
밀레시안의 단호한 한마디에 톨비쉬는 가만히 미소지었다. 아까부터 웃기만하는 그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새 장전이 끝난 검은별이 밀레시안의 손에 들려져 있었다. 톨비쉬가 무릎을 꿇고 연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누구 하나가 죽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
"........."
"그 방에 당신과 내가 갇혔다면 누가 죽어야 하는걸까요?"
"당연히..."
나죠, 라고 대답하려는 밀레시안은 말을 멈추고 가슴을 움켜쥐었다. 한손에 들린 검은 별이 무겁도록 밀레시안의 팔을 잡아당겼다. 송곳으로 폐부를 찌르는 고통속에 밀레시안은 잠시 숨을 헐떡이며 무릎꿇은 톨비쉬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망가졌다. 밀레시안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호흡을 가다듬으려 애쓰며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문장을 따라 눈을 깜빡였다.
나는 더 이상 싸울 수 없어. 모르는 기억들이 밀레시안의 가슴속에서 머리를 향해 치솟아 올랐다. 기억을 회상하는 것이 아닌 영혼에 때려박아진 상처. 이 마음은 망가졌다. 고쳐쓸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지고 깨져 더이상 영혼을 순환시키는 심장으로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밀레시안이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검은 별을 놓고 선반을 짚으려 했지만 따뜻하고 커다란 손이 총을 놓치못하도록 감싸쥐어왔다. 등뒤에서 따뜻한 모닥불의 향기가 느껴졌다.
눈앞에 있던 톨비쉬는 온데간데 없고 등뒤에서 다정한 연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톨비쉬는 하다못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웃고있었다. 돌아보지 않아도 그 즐거운듯한 음색을 숨길 수가 없었다. 겨우 한 통증을 견뎌낸 밀레시안이 떨리는 눈으로 뒤를 올려다보았다. 톨비쉬가 미소짓고 있었다.
"내가 죽어야죠"
다시 한번의 격통. 하지만 밀레시안은 이를 악물며 총을 다잡았다. 내가 죽었어야지. 나를 죽게 내버려두었어야지. 밀레시안의 미련이 가득한 울음 앞에서 톨비쉬는 후련한듯이 웃으며 미안합니다 라고 사과했다. 내가 사과하도록 내버려두었어야지. 밀레시안의 총이 관자놀이를 향해 올라왔다.
"당신은 내게 그러면 안되는거였어"
"당신도 내게 똑같은 짓을 하려고 하는군요"
"똑같다고? 이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밀레시안은 주체할수없이 떨리는 손을 다잡으며 소리쳤다. 눈물로 얼룩진 목소리에 절망감이 배어나왔다. 톨비쉬가 밀레시안과 똑같이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 누구 하나가 죽지 못하는 방. 그 안에서 한쌍의 총은 각자의 주인을 겨눈채 짐승과도 같은 낮은 울음소리로 시동음을 내고 있었다. 연사력과 사정거리를 포기하고 파괴력을 중시해서 만든 오직 대상을 파괴하도록 만들어진 힐웬의 병기.
밀레시안을 톨비쉬에게 그 총 내려놓으라고 위협하며 해머를 뒤로 젖혔다. 톨비쉬가 쓰게 웃음을 지었다.
"나는 죽지 않는단 말이에요"
"틀려요. 당신은 죽습니다"
밀레시안이 애원섞인 설득으로 눈을 감았다. 톨비쉬는 그런 도피를 용납하지 못하겠다는듯 단호한 목소리로 밀레시안의 턱을 잡아 시선을 맞추었다. 이 온기, 이 손의 감촉. 밀레시안이 거부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손길. 밀레시안은 노기를 띈 파란 눈동자를 마주보며 눈을 깜빡였다. 턱이 떨려오고 텅비어버린 뱃속에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두려움, 공포감. 밀레시안의 총이 살짝 각도를 내리며 머리에서 떨어졌다. 아직 겨누고 있는 목표물이 바뀐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바로 옆에 붙인것보다는 나은 모양새였다.
"나는 불사에요"
"당신은 다시 되살아날 뿐이지 죽지 않는건 아닙니다"
"그런거 별로 상관없잖아요"
"상관이 없을 수가 없지요. 당신이 내 앞에서 죽는건데"
톨비쉬가 이것보라며 머리에 겨눈 검은별의 헤머를 당기었다. 이제 밀레시안과 톨비쉬 모두 방아쇠만 당기면 되는 상태 밀레시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당신은 끊임없이 끊임없이 내 앞에서 죽어나갔습니다"
"......"
"팔다리가 잘리고, 내장이 터지고, 머리가 날아가더라도 당신은 내게 걱정하지 말라고만 말했었죠"
"그건...."
"당신은 나를 지켰습니다"
톨비쉬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리고 차갑고 음울한 원망만이 그 미소를 대신해서 밀레시안을 노려보았다.
"내 마음이 망가져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나를 지켰습니다"
나는 망가졌다. 밀레시안의 머릿속에서 다시한번 그 짧은 문장이 스쳐지나갔다. 이건 그의 기억? 아니면 나의 꿈이 만들어낸 환청? 밀레시안이 혼란스러워 할 새도 없이 톨비쉬는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며밀레시안의 고개를 잡아끌었다. 톨비쉬의 얼굴이 바싹 가까워져왔다.
"기분이 어떻던가요? 당신앞에서 내가 죽는 모습은"
이 강렬한 감정이 분노인지 원망인지, 밀레시안으로서는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던 질문. 밀레시안은 이 혼란스러움이 어디서 오는것인지 어렴풋하게 이해하며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잊어버리고싶은 전투의 기억들이 빠르게 되감아졌다.
"그만해요"
"내가 그렇게 말했을때도 당신은 내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만, 톨비쉬. 그만"
밀레시안은 망설임없이 방아쇠를 당기며 이 의미없는 논쟁의 끝을 고했다. 고막이 터져나가는 파열음과 함께 적막이 밀레시안의 눈을 가렸다. 아팠던가? 뜨거웠던가? 그런 상상은 검은 별의 앞에서 무의미한 흔적들이였다. 자신의 피로 물든 톨비쉬의 얼굴이 마지막 기억의 끄트머리에 매달렸다 떨어졌다.
밀레시안에게 그런 그의 모습은 낯선것이 아니였다 한달에 한두번, 심하면 일주일에 한번씩 보던 얼굴. 그 절망. 그 고통. 그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밀레시안은 이번 전투에서도 그가 살아남았음을 실감했다. 생각의 순환을 끊고 죽음이 밀레시안의 사고속에 쉼표를 찍었다. 다시 부활할 시간이였다.
".........."
다시깨어난 밀레시안은 변하지 않은 풍경에 잠시 입을 벌렸다. 맑은 공기대신 비릿하게 흘러들어오는 피내음에 곧 입을 다물었지만 그렇다고 숨을 쉬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아니, 안쉬어도 되지 않을까? 이건 꿈이니까, 그런 설정같은거 만들어내면 안될가? 실없는 생각을 하며 밀레시안은 바닥에 엎어진 커다란 시신을 끌어안았다. 피투성이로 물은 새하얀 제단에서 그의 반짝이는 금발머리는 마치 이것을 보라고 세워놓은 퀘스트마크처럼 눈을 땔 수 없는 강렬한 색체였다. 끌어안은 그의 품에서 아직 식지 않은 온기가 느껴졌다. 피냄새 사이로 피어오르는 향긋한 향목의 냄새, 타오르는 불길의 온기와 함께 최고급장작 특유의 은은한 향기가 그의 몸에서 진하게 느껴졌다. 알반은 모두 화장으로 시신을 태운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적이 있었다. 선지자들에게 그 시신을 이용당하지 않도록. 그 영혼이 짓밟히지 않도록. 밀레시안은 타는듯이 뜨거운 그의 몸을 끌어안고 피로 젖은 머리칼에 뺨을 부비었다.
"..... ..... ..."
속삭이려는 말소리가 밀레시안의 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채 쉰소리로 흐느낌속에 배어들었다.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밀레시안은 터져버린 슬픔을 추스리지 못한채 몸을 떨었다. 힘없이 떨어지는 톨비쉬의 팔은 더이상 밀레시안의 어깨를 잡아줄 수가 없었다. 깨어진 방패와 꿰뚫는 유성우, 그리고 눈앞을 가리던 새하얀 그늘. 부서지는 갑옷들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피를 뒤집어쓰며 밀레시안은 처음으로 전투중에 비명을 질렀다.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2차로 폭발할 위험이 있는 광물을 품은 상태로 도망가라고 말하는 톨비쉬의 곁에서 안된다고 소리지르던 밀레시안의 기억은 거기에서 바로 게이트의 한 구석으로 이동당해있었다. 손을 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속을 뒤집는 뜨거운 열기만이 자신이 그 2차 폭발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음을 상기시켰다.
"아, 밀레시안니...ㅁ"
병동에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지만 밀레시안은 그 인사를 끝까지 듣지 못했다. 망설임없이 목을 베었다. 이런 상처입은 육체는 필요없어. 흐려지는 시야속에서 밀레시안은 질책하는 톨비쉬의 얼굴을 발견했다. 당신이 그런 얼굴을 하면 안되지. 밀레시안이 정신을 잃었다.
"............"
"..........."
".............알터"
정신을 차린곳은 전혀 모르는 풍경의 방안이였다. 이런곳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도 잠시 눈밑까지 다크서클이 내려온 알터가 헉하는 소리와 함께 불편한 잠에서 깨어났다.
"밀레시안님, 깨어나셨어요?"
"여기 어디..."
"잠시만요! 지금 아벨린님과 힐러님들을 모셔올테니까! 잠시만요!"
알터는 무엇부터 해야할지 모르는 아이처럼 잠시만요 를 언거푸 외치며 방문으로 달려갔다. 방안과 방밖을 내다보며 기다려달라고, 잠깐이면 된다고 허둥지둥하다가 그렇게 밖으로. 밀레시안은 차마 거기에 잠깐만, 이라고 말한마디를 보태지 못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멍하게 떨려오는 머릿속이 하얗고 까만 빛으로 점멸하기를 반복한다.
"....!!! ......!!"
"...! ...... .....!"
복도에서 흥분한 알터의 목소리와 차분히 가라앉은 아벨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보다 조금 흥분하긴 했지만 알터에 비해서는 차분하다고 할 수 있는 목소리였다. 뒤로 따라오는 발자국수를 보아하면 피네와 카즈윈도 함께. 어렴풋하게 너희들은 잠깐 기다리라는 피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저건 벨테인 조원들을 향해서 하는 말이겠지. 문이 열리고 쏟아지듯 들어오는 조장들의 사이에서 낯익은 그리브의 발자국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반짝이고 아름다운 갑옷들 사이로 새카만 뱀을 가슴에 품은 남자는 보이지 않는다 밀레시안이 눈을 감았다.
"....쉿"
알터가 밀레시안에게 다가가려는것을 피네가 작은 주의와 함께 빠르게 잡아채었다.
불만스러운 얼굴로 멈춰선 알터를 재치고 아벨린이 밀레시안에게 다가갔다.
"밀레시안씨..."
"알아요"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할까. 그런 기색이 역력한 아벨린의 첫마디를 자르고 밀레시안이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말하지마. 말로 꺼내지마. 밀레시안은 웃는낯으로 그렇게 위협하며 상처입은 자신을 보호하려 이빨을 들어냈다. 한껏 자세를 낮춘 영웅의 으르렁거림에 아벨린은 살짝 당황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나는 불사이고 이런 일은 항상 겪어왔던 일이니"
거짓말이다. 이러한 일은 한번도 겪지 못했던 일이였다. 그리고 두번다시 겪을 일도 없겠지.
"굳이 말로 다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괜찮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밀레시안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뜨는 모습이 퍽이나 어색하지만 아무도 밀레시안의 모습을 지적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새는 지저귀고 햇살이 비쳐들어왔다. 별을 가리는 자욱한 연기가 가신 새 날의 아침이 밝아왔으니 다시 삶을 살아야지. 밀레시안이 쉬고싶다는 말을 하며 눈을 감았다. 이것으로 되는걸까 혼란스러워하는 아벨린들의 시선이 무언속으로 오고갔지만 밀레시안의 눈을 뜨여지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인기척이 없어지고 난 뒤에야 밀레시안은 다시 눈을 떠 베개속에서 느껴지던 묵직한 물체를 꺼내들었다.
꿈의 파편, 혹은 무의식이 선물한 마지막 탈출구. 검은별과 마주한 영혼이 안녕을 고하며 방아쇠를 당기었다.
글
타르밀레)환상 (마비노기전력60분)
0416 환상
"... .시안.... "
"......."
"밀레시안...."
"....타르라크"
".......밀레시안 누나!"
들이마시는 숨결사이로 부드러운 약초의 향기가 스며들어왔다. 꿈, 혹은 환각. 밀레시안이 느리게 눈을 깜빡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노을빛으로 타오르는 장작불 너머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스튜의 기포소리까지 들려오는 고요한 오두막 안. 잠이 덜 깬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밀레시안의 시야 밑에서 아이참, 밀레시안누나..! 하고 옷을 잡아당기는 손길이 느껴져왔다. 곱슬거리는 금발의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남자아이가 볼을 부풀린채 밀레시안을 올려다보고있었다. 밀레시안의 눈이 살짝 떨려왔다.
"......아,"
"우웅.... 아직도 졸려요?"
'졸리십니까..?'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의 목소리 너머로 그리운 청년의 목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마른 기침소리로 가다듬어진 청량하고 깨끗한 목소리. 설원을 닮았다고 한다면 얄궂은 칭찬이라며 눈을 흘겼었겠지. 딱 그정도, 조금 짓궂은 장난을 주고받으며 농담이라는것을 하는 친구. 밀레시안의 시선이 어린 타르라크 뒤를 쫓아 움직였다. 쪼르르 달려간 아이는 제몸만한 곰인형을 손에 쥔 채로 앞치마를 두른 베이드릭시드에게 다가갔다.
누군가에게 선물받은것이 분명한 곰돌이 무늬의 앞치마를 두른 베이드릭시드가 허리를 굽혀 어린 타르라크에게 관심을 보였다. 타르라크는 밀레시안쪽을 보며 무언가를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일어났는가"
타르라크의 머리를 쓰다듬은 베이드릭시드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밀레시안에게 인사를 건내었다.
그제서야 자신이 베이드릭시드의 오두막에서 깜빡 잠이들었다는 사실을 자각한 밀레시안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담요를 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오래머물렀어. 조금 낡았지만 보드라운 담요가 밀레시안의 손에서 착착 접혀져나갔다. 베이드릭시드는 조금 서운한 얼굴로 앞치마의 매듭을 풀었다.
"저런, 조금 더 머물다 가지 않고"
"아니에요. 너무 신세를 진 것 같아요"
"저녁이라도 먹고 갈 생각은 없는가?"
베이드릭시드의 허리뒤에서 타르라크가 눈을 반짝이며 밀레시안을 올려다 보았다. 한껏 기대에 부푼 귀여운 얼굴을 실망시키는것은 미안하지만 밀레시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가가 타는듯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였다. 밀레시안은 고개를 돌리며 숨을 들이마셨다. 잘다듬어진 마나허브의 향기가 밀레시안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죄송해요. 급한일이 생각나서요"
뻔한 거짓말. 일정이 비었다고 타르라크에게 선물할 그림책을 들고 먼저 찾아온 밀레시안이 급하다는 일이 생겼을리 만무했다. 오랫동안 여행자를 만나온 현자는 가만히 그렇구먼. 하고 대답하며 어린 제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실망으로 어두워진 타르라크는 고개를 푹 숙인채 곰인형을 끌어안았다.
"미안해, 다음에 또 선물가지고 올테니까"
밀레시안은 속에도 없는 사과를 건내며 짐을 챙겨들었다. 사실 밀레시안의 말에는 하나도 미안한마음이 담겨있지 않았다. 어서 이 자리를 모면하고싶은 비겁한 마음만이 어리고 순수한 호의에게서 등을 돌려 문고리를 잡고 서 있을 뿐이였다. 밀레시안이 외투를 두르며 문을 밀어내자 따뜻했던 오두막 안으로 차갑게 얼어붙은 밤공기가 한아름 쏟아져 들어왔다. 순식간에 얼어붙는 하얀입김을 보며 밀레시안은 잠시 멈칫거리며 머릿속에 떠오른 설원의 풍경을 지워냈다. 지나치게 감성적인 밤. 고개를 돌리면 그가 서 있을 것 같다는 헛된 공포를 삼키고 밀레시안은 뭉근한 벽난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금빛 곱슬거리는 푹신한 아이의 시선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럼, 또 올테니까"
거짓말. 하지만 밀레시안의 죄책감보다도 더 빠르게 말은 밀레시안을 태우고 문게이트를 향해 달려갔다. 이웨카에 반응하여 하늘로 떠오르는 떨어진 운석조각의 모습이 마치 밀레시안의 그리움과 닮아있었다. 쇠사슬로 묵여 돌아가지 못하는 파편. 그들은 쇠사슬같은것이 아니야. 밀레시안은 가슴속에 차오르는 헛된 망상들을 지워내며 문게이트에 올라섰다. 어린 타르라크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다.
밀레시안의 이름을 부를때 그 만이 가지고있던 독특한 억양과 버릇을 꼭 닮은 그 말투.
잠에서 깨어난 밀레시안이 부른 타르라크가 자신이 아니라는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 타르라크는 몇번이고 반복해서 옛 지기의 목소리로 밀레시안을 불러 일깨웠다.
이것이 당신이 나를 위해 안배한 징벌이라면 너무 잔인한 벌입니다 마하. 밀레시안은 아무도 듣지못할 고해를 읊조리며 설원에 내려섰다. 빛과 함게 사라지는 말고삐를 놓으며 천천히 자신의 발로 언덕을 내려가는 밀레시안은 어딘지 지쳐보이는 모습이였다. 꿈이라도 꿨었다면 조금 덜 동요했을까. 밀레시안은 새까만 제단에 손을 얹고는 잠시 눈송이가 떨어져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이곳은 고요했고 신비로운 곳이였다. 마치 당신의 눈동자처럼. 밀레시안이 제단의 기둥에 이마를 기대었다.
주인을 잃은 제단은 찾아오는 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였다. 누군가 나서서 눈을 치우거나 하지는 않았을것이다. 그저 남아있는 마나가 매일 밤 달빛을 모아 스스로를 수복하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할뿐. 그도 이 제단의 일부였다. 평생을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을것이라 생각했다.
안전하게 잡아놓은 애완동물처럼. 밀레시안은 스스로가 생각한 쓰거운 상념에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애완동물도 아니였고 상처입은채 도망친 패배자도 아니였다. 끊임없이 나아갈 방법을 찾던 젊은 현자는 끝내 금단의 선을 넘어서라도 이 결계를 넘어가는것에 성공했다.
비록 그 끝이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그것이 밀레시안의 심장을 겨누고 있었지만 밀레시안에게는 그러한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축하해주고 싶었다. 가면을 벗은 그 순간에, 밀레시안은 경황을 잊고 그에게 잘되었다고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는 웃었을까? 어떻게? 쑥스럽게? 자랑스럽게? 검은가면의 웃는 얼굴을 떠올려보려 눈을 감지만 밀레시안의 가슴속에 그런 따뜻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화를 내었고 원망했고 조롱했으며 결국 밀레시안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건내었다. 웃어주지 않았다. 놀라고 씁쓸해하면서도 환한 웃음은 짓지 않았다.
딱 그정도 웃음기 없이 생사를 거론할정도의 배신. 친구였을때와 별다를것이 없는 건조한 상처에 밀레시안은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가만히 그가 남긴 상처의 모양을 덧그리며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간의 행적을 되짚어보았다. 구해왔던것 구하지 못한것. 지나쳐왔던 사람들과 닿지않았던 마음들. 숨겨왔던 진실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무엇이 그릇된 일이였는지 아무리 생각하고 찬찬히 되짚어보아도 밀레시안으로서는 젊은 현자의 생각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당신은 이 곳에서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건가요"
밀레시안은 제단의 주인이 서있던 자리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눈을 감았다. 눈, 오로지 새하얀 풍경뿐인 적막의 공간. 찾아오는 이도 없고 마음을 의지할 무언가도 없는 순백의 공간속에서 밀레시안은 그곳이 소울스트림과 닮았다고 웃음지었다. 만약 그러했다면 조금 더 좋았을텐데.
밀레시안은 마치 나오가 그러했던것 처럼 우아하게 원을 그리며 제자리에서 한바퀴를 돌아보였다. 높고 높은 하늘 위, 소울스트림에서 나와 당신, 그리고 친애하는 나오와 루에리 이렇게 넷이서 만났더라면 좋았을텐데.
서로가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리움을 채우고 서로가 앓기만했던 오해를 풀고 웃으며 그렇게 손을 마주잡았더라면 좋았을텐데. 무엇이 그렇게 슬프고 무엇이 그렇게 괴로웠을까. 수많은 시간들을 함께 보내며 밀레시안은 단 한번도 그가 괴로워하고 있다고 헤아리지 못했다. 그저 조금 부자유스러웠겠구나, 조금 혼란스러웠겠구나 하고 지레짐작으로 흘러넘겼을 뿐.
'.......'
아무도 없는 설원속에서 밀레시안은 그리운 친구의 목소리가 들리는 환상을 보며 제자리에서 멈춰섰다. 제단에서 이어진 두서없는 발자국은 밀레시안이 추는 춤에 따라 이리저리 엉망으로 흩어져 있었다. 나무열매와 마나허브, 그리고 오래된 고대 정령의 화석조각들. 화이트허브를 이용해 정령의 수리 포션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던 기억이 오래된 상자에서 꺼낸 그림마냥 그리움이 가득 담긴 환상으로 밀레시안의 눈앞에 떠올랐다.
당신은 이제 없다. 앞으로 자라난다 하더라도 그 때의 당신은 더이상 내 곁에 없겠지. 미래를 알고있는 현자의 미소처럼 씁쓸한 얼굴이 밀레시안의 얼굴을 뒤덮었다.
슬퍼하지마. 여기서 울지마. 울면 잊어버린다는 속설을 믿는건지 밀레시안은 필사적으로 눈을 깜빡이며 두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흘러넘치지 못한 오열이 침묵으로 내려앉은 눈더미 사이로 진득하게 스며들어갔다.
어디에도 당신은 없어. 환상속에서 조차 떠오르지 않는 타르라크의 얼굴을 덧그리며 밀레시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떤 얼굴이였더라. 가면뒤에 있었던 당신의 얼굴은. 내 친구의 얼굴은?
차가운 눈위에 무릎을 꿇으며 거친 호흡을 반복하는 밀레시안의 목울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과한 호흡으로 멍해지는 시야속에서 밀레시안은 타는듯한 유황냄새를 맡았다. 붉은 날개의 여신이 내려다보는 용이 잠드는 동굴.
빛 속에서 사라지는 드루이드가 밀레시안에게 손을 내뻗었다
'밀레시안 씨'
감사하고 죄송하고 미안하다는 말. 그 세마디를 영혼의 근간처럼 몇번이고 몇번이고 되뇌이면서 버텨왔었건만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지게 될 줄이야. 밀레시안은 녹아버리는 눈송이를 보며 낮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떨어지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 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였다.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새 한 뼘 정도 자라난 어린 타르라크가 그때와 같이 밀레시안의 이름을 부르는것을 듣고 깨어났을 때 밀레시안은 자신이 그의 집에 와 있었다는 착각에 빠져들었었다.
만일 이 오두막이 탈틴에 있는것이 아니라면, 저 바깥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설원의 나무라면. 이 그리운 냄새가, 이 낯익은 담요가, 이 따스하고 상냥한 공간이 그가 머무는 곳이였다면. 지금 그곳에 내가 있는것이라면.
주마등이 지나간다면 이런 느낌이였을까 싶을정도로 빠르게 지나가는 거짓된 환상들. 타오르는 모닥불 소리너머로 냄비과 국자가 스쳐지나가는 쇳소리가 아니였다면 순간적으로 끌어안을뻔 했던 팔을 감싸 자신의 양 어깨를 부여잡은 밀레시안이 코끝으로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응시하며 몸을 웅크렸다.
당신은 이제 여기에 없다. 북쪽 설원의 끝에도, 내 마음속에도.
눈이 녹는것을 바라보며 밀레시안은 이제 그만 이 겨울을 떠나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글
톨비밀레)우주au(패러디)
우주비행사 톨비쉬 보고싶다
인ter스텔라 + 개인취향클레셰 + 뒷심부족
길어져서 쓰다 생략한 비하인드 설정
1.밀레가 심심해서 소울스트림째로 톨비쉬네 우주에 나타남
2.관측되고 있는것을 나오가 알아채고 돌아가자고 하지만 밀레는 오히려 관심을 가짐. 나오의 허락을 받아 자신들을 찾아온다는 다난들의 건물을 살펴보다가 톨비쉬를 보고 첫눈에 반함
3.톨비쉬를 소울스트림에 데리고오는바람에 위장결계에 문제가 생김(헤일로) 바깥에서 관측가능하게됨
4.나오가 없는 틈을 타 밀레가 톨비쉬를 또 소울스트림에 불러들임. 나오에게 대박혼남
5. 톨비쉬가 또 보고싶어진 밀레가 나오의 눈치를 보다가 안될것 같자 소울스트림을 탈주
6. 신들에게 걸려서 연대로 깨지고 톨비쉬들은 강제귀가조치. 여기서 약간의 시간의 차이가 생겨 7년이 지남
7.밀레가 신들을 설득해서 톨비쉬들과 같은 육체를 가지고 현신, 톨비쉬집으로 돌격 앞으로
8. 톨비쉬가 밀레에게 반한것도 첫 만남때였지만 그때는 아직 연애의 의미가 아닌 순수한 끌림상태. 연애대상으로 자각하기 시작한것은 코를 톡 치고 놀라는 얼굴을 보면서. 그 전까지는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무의식이 힘냈다. 연령에 대해서 고민하긴했지만 애초에 인간이 아니니(성장속도) 괜찮지 않을까..?
https://twitter.com/teclatia/status/72066549992364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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