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다른 패럴랠 au
트위터/au모음
2015. 12. 25. 02:57
11.11
https://twitter.com/teclatia/statuses/664423808481124352
뱀파이어au로 뱀파이어 일족인 알반기사단들이랑 은세공사 밀레시안들이 보고싶다. 미스릴로 보호받는 일족과 뱀파이어 기사단이랑 웨어울프 이세계신 이면 딱 맞을 것 같다.
12.22
https://twitter.com/teclatia/status/679332610481324032
센티넬버스로 가이드가 필요없는 밀레시안과 그런 밀레시안을 따라다니는 톨비쉬가 보고싶다.
순수한 영혼이여서 스스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센티넬에게 신께서 당신을 제게 보낸 이유가 있을겁니다 하고 자신만만하게 손을 끌어당기는 가이드 톨비쉬보고싶다
원래 가이드가 없는 센티넬은 힘의 균형을 못잡아 몸을 해치는게 정상인데 혼자 안정화 된 비정상상태의 밀레시안이 톨비쉬와 접촉하면서 정상적인 상태를 되찾아서 오히려 균형을 잃고 힘을 제어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안정화 시키려면 오랫동안 떨어져 있거나 관계를 가져야하기때문에 오히려 더욱 멀리하며 꺼려하는 사이가 되어버렸지만 고집스럽게 따라붙는 톨비쉬에게 어쩌다 한번씩 도움을 받고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정상상태로 돌아가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점점 누군가를 의지하는 안락함에 스스로 톨비쉬를 의지하기 시작하는 밀레가 보고싶다.
인간성을 회복하는것까지는 좋았지만 영웅으로서는 효율이 떨어지는 밀레시안을 보고 위에서는 의견이 분분해져서 둘을 떨어트려야하네 말아야하네 하고 말이 많았으면
글
톨비밀레)삼하인
마비노기
2015. 11. 1. 02:04
BGM 무한반복
사박거리는 소리와 함께 설원의 일부분이 무너져내렸다.
또렷하게 새겨진 발자국 위로 금속부츠의 서늘한 광택이 눈가루를 떨어트리며 지나쳤다.
설원에 익숙치 않아 보이는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천천히 길을 따라 나아가는 방문자의 로브 안쪽에서 하얀 입김이 길게 피어올라갔다.
입밖으로 세어나오자마자 하얗게 얼어붙은 숨결이 뿌옇게 흐려진 하늘속으로 녹아들어 사라지는 어느 숲 길.
하늘부터 발끝까지, 단조로운 무채색빛으로 이어지는 새하얀 세상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끊임없이 내리는 눈들이 지나온 발자국을 덮는동안 방문객의 소리를 들은 코요테들이 언덕을 따라 내려오기 시작했다.
발자국에 코를 받고 킁킁거리는 들짐승의 눈동자가 예리하게 빛을 발하며 동료들을 불러모은다.
사람 발자국 두어번에 짐승의 발자국 여덟번, 뜨거운 숨을 연거푸 내쉬는 짐승들의 그르렁 거리는 목울림들은 금속 부츠가 내는 발소리 뒤로 균일하게 이어져갔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코요테들이 신경쓰일법도 하지만 톨비쉬는 곁눈 한번흘리지 않은채 묵묵하게 걸어나갈 뿐이였다.
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한 것은 발목까지 푹푹 빠지던 눈밭이 조금씩 줄어들 무렵의 일이였다.
깊이 눌러썼던 후드를 뒤로 젖히자 갑갑했던 시야가 시원하게 트이며 수많은 눈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법의 영향인지 일정 높이 이상 눈이 쌓이지 않는 공터 한가득, 어설프게 만들어진 눈사람들이 가득 늘어선채 낯선 방문객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눈사람들 뒤로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는것은 길을 감추고 서 있는 마법의 제단.
길을 감추어 놓는 용도이면서 빛을 내고 있는 모습은 눈사람의 비뚤어진 눈코입보다도 우스꽝스럽다.
미련이라는 것을 풍경화로 그린다면 아마 이러한 모습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톨비쉬는 눈사람들을 지나쳐 제단의 앞으로 걸어갔다.
"....끄응"
톨비쉬가 눈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는 동안에도 그를 뒤따라오던 코요테들은 여전히 자세를 낮춘상태로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있었다.
집단 사냥에 능숙한 들짐승들 답게 기척을 감추려는 모양새는 제법 그럴싸하지만 위협의 느낌은 들지 않는다.
으르렁거리는 소리도, 바짝 올라선 꼬리도 없이 낮게 울린 침음성만이 그들의 소통의 전부. 어딘지모르게 축 처져 보이는 귀가 눈사람의 몸통뒤에서 팔락거린다.
길들여지지않은 눈동자에는 호박빛으로 빛나는 야성이 가득해 보였지만, 눈사람들을 지나갈수록 어딘지모르게 위축되고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보이지 않는 선이라도 그어져 있는 것인지 어느 눈사람을 기점으로 코요테들은 본격적으로 불안감을 나타내며 더이상 넘어오지를 않는다.
두려운 곳,
무서운 것이 사는 곳,
왜 그런곳으로 들어가는거야? 그렇게 이야기 하는 코요테들은 부지런히 톨비쉬의 주변을 맴돌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톨비쉬는 입이 쓰게 웃으며 제단위로 발을 올렸다.야생짐승들 마저 꺼려하는 공간이 되어버린 시드 스넷타, 전설의 세 용사에 대한 평가는 어느새 그정도까지 떨어져 있었다.
결계를 넘어서도 이어지는 눈내리는 길에 톨비쉬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살랑거리며 떨어지는 눈송이가 희뿌연하늘을 배경으로 삼은 탓인지 마치 허공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갑자기 나타난것 치고는 꽤나 굵은 눈송이, 하지만 체온에 닿자마자 스르륵 사라져버리는 덧없는 존재였다.
쌓이기 전까지는 눈치 채지못할 무게감없는 그림자같은 것. 갑자기 돌아온 드루이드도 마찬가지였다.
여신과 "싸우고" 글라스기브넨에게서 도망친 드루이드.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를 이끌고 설원속에 숨어있을 수 밖에 없어진 마법사는 일상생활을 유지하는것 조차 힘든 상태였다. 어리석은 선택끝에 비극을 맞이한 젊은 청년.
기사단 내에서 찾아낸 사건 이전의 그의 대한 평가는 이러한 것이 전부였다.
상처입은 그를 얕봤던 탓일까, 그의 곁에 나타난 밀레시안의 위광에 홀렸던 탓일까,
기사단은, 아니, 우리들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은, 그는 드루이드였다는것을 잊어버렸었다. 그것도 대 마법사 마우러스가 키운 젊은 수제자라는 사실을. 그가 가족을 해친 마족에 대한 증오만으로 여신을 찾아낸 무서운 집중력을 가진 혈기어린 청년이였다는 것을.
누구의 눈이 닿지 않는 시간속에서 그는 시간과 인간으로서의 한계마저 뛰어넘어있었다.
새하얀 설원속에서도 상처입은 마나를 대신할 것을 찾아낸 청년은 어느새 중년의 대마법사가되어있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고대의 기술 사용했다. 소울스트림을 오염시키고 잊혀진 용들의 수장을 불러냈으며, 돌아오지 않을꺼라 확신했던 바이브카흐의 여신을 불러내면서신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신의 힘까지 휘두른 무법자, 인간을 위해서라고 말하며 신에게 반기를 든 반역자.
신의 뜻을 따르는 알반기사단으로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적대할 수밖에 없는 적이였지만 톨비쉬는 게이트 내에서만큼은 그에 대한 말들을 지워줄것을 당부했다.
그를 언급하지도, 깊게 캐묻지도 말것. 기사단 내에서 수집한 자료나 평가를 말하지 말것, 그를 떠올리게 하지 말 것.
이러한 사항들을 슈안에게 전달했을때 그는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지만 곧 그는 납득한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슈안의 맞은편, 도구들을 모아놓은 선반 앞에 선 밀레시안이 시선이 만돌린에서 멈춰서있었던 탓이였다.
밀레시안에게 있어서, 그 드루이드는 세상에 둘도 없을 인간이였다. 희대의 마법사로서도, 밀레시안의 선인으로서도.
여신의 부름을 받은 어린 별을 알베이던전까지 안내한 인도자였고, 최고의 조력자였으며, 유일하게 여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경험자, 가장 깊은 이해자였다.
동시에 그는 탐구자였다. 영혼과 순환, 불멸과 재생. 드루이드였기에 훨 씬더 깊이 알 수 있었던 지식들을 가진 뛰어난 학자였었다. 밀레시안에게 알려줄 수 있는 모든 지식을 전해주었다. 스킬, 근처의 소문, 여행을 하는법, 던전을 도는법, 그리고 호신부를 만드는법, 정령과 이야기 하는법. 언젠가는 별을 위해서 그 모든 지식을 기꺼이 책으로 써내려가 주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모든것을 무색하게 만들도록 지독하게 상처입힌 장본인.
"....."
걸음을 멈춰선 톨비쉬는 전에 없이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차갑게 얼어붙은 공기를 뱃속깊이 집어넣었다. 가슴속에서 머리로 치솟아오르려는 열기를 강제로 토해낸다.
한숨과 탄식이 섞인 뜨거운 숨결이 하얗게 올라가는 설원의 하늘, 서쪽으로부터 비쳐오는 붉은 석양에 눈이 부셨다.
목적지는 아직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웨카가 떠오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적절한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한 것인지 톨비쉬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작은 병을 꺼내었다.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작고 납작한 병. 희미한 보라빛 액체를 가득 담은 작은 병에선 이세계의 것이 아닌 영기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얄팍한 마개를 열어 드러난 물약의 표면위로 톨비쉬의 얼굴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아직 마시지도 않았지만 벌써 목구멍에 타틀어가는 것같은 쓰라림이 목안을 가득 매워왔다.
마음이 지친 생기없는 모습의 별, 물약의 빛깔은 처음 그와 만났던 밀레시안과 닮아있었다.
그때의 밀레시안은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하는 슬픔에 잠식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저 다가가기만해도 먹먹함이 전해져 오는 어두운 감정이였다. 이런 약의 향미따위는 느끼지 못할 정도로 진하고 깊고 깊은....
약을 모두 마신 톨비쉬는 입가를 닦아낸뒤 근처 바위를 향해 걸어갔다.
유쾌하지 못한 기류가 온몸을 감싸는 기분에 톨비쉬는 조금 휘청거리며 바위 한쪽에 걸터앉았다.
약이 스며든 육체의 감각이 균형을 깨트린채 제각각의 방향으로 달려나가는 끔찍한 느낌이였다.
약의 정제에 대해서는 알고있는 것이 없으니역시 단일약품으로 복용한것이 문제였을까. 그러나 오늘이라는 기한을 맞추기에는 다른것을 구할 시간이 없었다.이세계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딱 반나절의 시간. 톨비쉬는 살짝 고개를 돌려 해가 저무는 속도를 확인하고서는 차게 식혀진 건틀렛에 이마를 기대었다.
눈을 감은 톨비쉬의 귓가에 어딘지 조금 의기소침한 밀레시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적이 뭔가요..?"
처음 톨비쉬와 만났을때의 그 목소리였다. 아르후안조와 처음 만났을 즈음의 그 목소리.
낯선이를 경계하면서도 호기심을 숨기지 못하는 어리숙한 별.
의심할 줄 모르고 선함만을 모아놓은것 같은 순수한 사람이였다. 그러면서도 불리한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는 사람,
처음보는 타인을 위해 노력하고 지키려하는 바보같은 우직함, 빛의 기사이자 영웅, 나아가 반신.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밀레시안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린 아이이기도 했다.
거짓말을 못해 우물쭈물 거리고 의심같은건 하지도 않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바보같을 정도로 거절을 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부탁들 들어주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까지한다.
폄하당해도 화 한번 내질않고 그저 멋쩍게 웃으며 자리를 떠나면서도 부르기만 하면 언제든지 다시 곁으로 돌아온다.
세계를 구했으면서 사소한 몇명의 사람을 잊지 못해 스스로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자각하지 못하는 세상물정 모르는 영혼.
보다못해 그것이 대단한 일이라고 말해주면 그렇게까지 훌륭한 일은 아니었다고 대답한다.
겸손? 오만? 감정을 긁어 일으키려 일부러 빈정거리는 말로 밀레시안을 자극했을때 별은 어딘지 지치고 체념한 미소로 대답했다.
더 잘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니까요.
하, 하고 한숨을 내쉬는 톨비쉬의 입에서 연보라빛 희미한 연기가 스쳐지나갔다. 약효가 조금 진정이 된것인지 어지러움증은 조금 가신 느낌이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위에 쌓인 눈을 털어내자 또 어디선가 밀레시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요?"
알터가 근신중이던 때, 밀레시안은 분명 지쳐있었다.
이리아에서의 일을 언급한 기사단을 경계하고 신의 힘을 요구하는 지령에 당황해 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가던 밀레시안.
톨비쉬는 늘 그 언저리가 신경이 쓰였다. 무엇이 별을 그렇게까지 떠미는 것이였을까. 거기서 어떻게 더 잘 할수 있다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이, 어떠한 이유로 별을 그렇게 몰아붙이는 걸까. 어디에 기준한 이상이고 무엇을 위한 완벽이였던 걸까.
별은 언제나 과거에 사로잡혀 있었다. 등뒤로 드리워진 그림자에서 뻗어나오는 손이 별을 자신들의 세계로 끌어당기려는 환각이 별을 괴롭히고 있었다. 들리지 않는 말을 속삭이며 후회감을 부추기고, 사라지고 없는 모습을 보여주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들. 미련이라고 하기엔 너무 지독했고 절망이라고 하기엔 덧없이 사라지는 그림자였다.
같이 행동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눈에 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톨비쉬는 과거의 망령들이 얼마나 밀레시안의 마음을 옭아매고 있는지를 통감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따금씩 밀레시안의 시선이 지금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사소한 순간이였고 찰나에 불과한 깜빡임이였다.
마나허브를 다듬을 때, 눈이 내리는 곳에 멍하니 서 있을 때, 만돌린을 만지는 벨테인조원들을 보고있을때, 그리고 가끔 이웨카 밑에서 자신을 바라볼때. 본인도 자각하지 못하는 순간에 잃어버린 것을 찾듯 허공을 헤메이는 눈으로 자신을 보고있는 모습을 보고있자면 또 그 발밑으로부터 그때의 음울한 그림자가 손을 뻗어 올라오는 것이였다.
금방이라도 별을 잡아채어 그런 미련따위는 모두 끊어내어 버리고 자신을 보게 하고싶은 충동에 휩싸이지만 눈치채지 못하게 주먹을 쥐는것이 고작일뿐. 톨비쉬는 늘 장난스럽게 웃으며 모른척했다.
그것은 그가 손 댈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였다. 기사단으로서도, 평범한 에린의 주민으로서도.
그러면서도 미련어린 호기심을 끊지 못해, 한번은 장난을 가장해 가볍디 가벼운 말로 밀레시안에게 물어본적이 있었다.
이름도 어떠한 다른 설명도 없이 그라고 지칭하며 물었던 농담같은 질문. 자신이 그렇게 그와 닮았냐고.
하지만 대답은 가볍지 않았다. 누구랑요? 하고 되물을 줄 알았던 밀레시안은 멍한 표정이 되어 톨비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부정했다. 다르다고, 그는 당신과 다르게 어딘지 유약한 사람이였다고, 목소리도, 체구도, 사용하는 무기도, 성격도 아무것도 닮지 않았다고. 대검과 방패를 같이 휘두르는 기사와는 다르다고 그렇게 부정에 거절을 거듭하는 밀레시안의 눈은 톨비쉬를 똑바로 쳐다보지를 못했다.
스스로에 못 박듯이 이야기 하는 별에게 차마 그럼 왜 저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겁니까 라고 묻지 못했다. 별은 시선을 떨어트린채 그의 그림자만을 보고있었다. 그날따라 지독히도 새까만 그림자였다.
이웨카가 지독히도 밝은 날의 일. 바로 오늘처럼 커다란 이웨카였다.
톨비쉬는 먹먹한 귀를 두어번 눌러보며 목을 두어번 돌려보았다. 우드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풀어진 목근육을 주무르며 드루이드의 제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지금부터 만나러 가는것은 이세계의 것이 아닌 것, 평소라면 만나선 안되는것. 그리고 동시에 오늘밖에 만나지 못하는것. 필요한 준비와 적당한 시간대가 모두 갖추었다. 남은것은 직접 부딫쳐 보는 것뿐.
톨비쉬는 다시 깊은 발자국을 남기며 설원의 끝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느려진것은 제단의 모습이 눈에 들어올 즈음 부터였다.
주인을 잃어버린것이 분명한 드루이드의 제단은 환한 마나의 빛으로 감싸여진채 눈과 시간을 밀어내고 있다.
제단의 중앙은 여전히 비워져 있었지만 그 한켠 야트막한 계단위로 가느다란 인영이 눈에 띈다.
밀레시안은 한없이 가라앉은 깊은 눈빛으로 제단의 중앙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이웨카를 기다리는 동안 계속 눈을 맞고 있던것인지 조금 추워보이는 모습이지만 밀레시안의 눈은 평온하게 감겨져 있었다. 별의 손에 쥐어진 낡은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쿨럭, 쿨럭'
아직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제단의 주인의 마른 기침소리가 톨비쉬의 청각을 예민하게 두드렸다.
살짝 거칠게 쓸린듯 불규칙하게 들리는 숨소리, 어딘지 조심스러운 기척과 지치고 나른한 느낌. 앳되다고는 할수 없지만 미성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의 부재때문이였을까, 그의 소리는 마치 메아리마냥 웅웅거리며 마치 동굴속에서 말하는것 마냥 넓게 퍼져나간다.
가볍게 스치며는 로브자락의 소리를 들으며 그의 움직임을 상상했다. 오른손을 들어 가볍게 말아쥔 손으로 입을 가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살짝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며 긴 한숨을 내쉬는 드루이드는 신기하면서도 낯설다는 듯이 밀레시안에게 말을 건네었겠지.
'이 삭막한 곳에.. 결계를 넘어 오셨군요...'
보였다기보다는 일련의 소리들로 추측한 사항들, 하지만 그의 귓가에 들리는 웅웅거리는 메아리들이 지금쯤 밀레시안이 꾸고있을 꿈의 광경을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왜 여기까지 왔냐는 간단한질문인데도 그것만으로도 기쁜듯 잠들어있는 밀레시안의 입가에 가볍게 미소가 걸린다. 이것이 별이 바란 안식. 지금도 이 설원의 위에서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르는 지인의 추억.
오해와 원망으로 얼룩지기 이전의 가장 행복했던 순수한 시간.
그 미련을 두 눈으로 확인해서일까 톨비쉬는 손끝이 저려져오는 것을 느끼고나서야 주먹쥔 손을 풀어냈다. 어느새 멈춰선 발이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한다. 한걸음, 딱 한걸음만 더 나아가면은 눈앞에 있는 별에게 손이 닿을 법도 한데 그의 두 다리는 마치 얼어붙은것 마냥 움직이지를 않는다.
어디선가 작은 들짐승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두려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작은 그르렁거림. 톨비쉬는 그것이 자신이 흘린 감정이라는 것에 놀란듯 입을 가렸다. 차갑게 얼어붙은 장갑의 온도가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것은 실패에 대한 불안감이였다.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대로 영영 놓쳐버린다면?
망설이고 있는 톨비쉬의 귓가에 깊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후우우...'
'참자'
'조금만 더 견뎌보자'
'아아...'
탄식과 절망에 잠긴 드루이드의 목소리였다. 고통과 기다림,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에 절망하고 바로 앞에 있는 마을까지 나갈수 조차 없는 육신에 얽메여 신음한다. 이웨카의 안식에 기대어 팔라라가 떠오르는것을 살피는 눈동자는 어떠했을까.
정말이지 별 볼일 없는 남자, 그러면서도 별을 손에 쥐는데 성공한 그가 지독히도 부러웠다.
눈을 감고 있는 밀레시안의 평온이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웠다. 자신이 내어주지 못한 안식에 빠져 있는 별이 사랑스럽고도 원망스러웠다.
"밀레시안,"
톨비쉬는 눈을 감은 밀레시안에게 다가가며 별의 이름을 불렀다.
수십번도 백번도 더 넘게 불렀을 이름이 이제 입에서 익숙한듯이 울린다.
"일어나십시오, 밀레시안."
"...."
잠이 든건지 의식을 잃은 것인지 밀레시안은 너무나도 무방비한 상태였다. 밀레시안을 흔들어 깨우려던 톨비쉬의 손이 별의 앞에서 멈춰섰다. 차갑다 못해 쓰라렸던 그 통증이 정말 불안감이였는지, 아니면 질투심이였는지,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감정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엉켜갔다. 건틀렛을 풀어내어 맨손이 된 톨비쉬가 조심스럽게 밀레시안의 뺨에 손을 얹었다. 얼어붙은 뺨에 따뜻한 손이 닿자 감겨있던 별의 눈가가 움찔거린다.
엄지손가락으로 뺨을 쓰다듬은 톨비쉬가 밀레시안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었다.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당신은 나의 목소리를. 이승도 저승도 아닌 곳에 있을 별을 향해 톨비쉬는 나즈막하게 속삭였다.
"이제 그만 일어나게."
톨비쉬 발치에 또 한병의 약병이 떨어져 내렸다. 아직 남아있는 약물이 눈위로 연보라빛 얼룩을 남기며 스며들었다.
설원의 위로 눈부신 푸른빛의 신성력이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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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고 있는 목소리가 있지 않습니까"
통행증을 만들고 있던 타르라크가 아무런 맥락없이 툭 하니 말을 던졌다.
벌써 몇번째 만들고 있는지 모를 다크나이트의 갑옷에 관한 통행증은 이제 눈만 감아도 그 문양을 따라그릴 수 있을 정도로 훤하다. 멀뚱히 타르라크가 통행증을 만들기를 기다리던 밀레시안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아무도 없는 설원에 있는 것은 타르라크와 밀레시안, 그리고 깨어난지 얼마 안된 정령뿐.
주인의 모습을 따라 어깨를 으쓱거리는 정령은 눈부신 흰 색의 빛을 내뿜었다.
"정령이라면 괜찮다고 하네요."
"아니 그쪽이 아닙니다"
"어...그러면...음...,여신님? 여신님의 목소리도 아직 들리지 않아요"
".....그렇습니까"
원하는 대답이 아니였는지 타르라크는 한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팔라라의 아래서 금빛 곱슬머리가 예쁘게 반짝거린다. 설원에서 보이는 태양이라, 밀레시안은 발끝으로 눈덩이를 톡톡 치며 주변의 분위기를 살폈다. 오늘따라 춥지 않은 날씨에 밀레시안은 조금 들뜬 기분이였다.
모처럼 좋은 날씨이것만 평소처럼 침울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한 톤 밝아진 목소리로 타르라크를 보며 재잘거린다.
"음... 여신님도 아직 힘든게 아닐까요. 봉인에서 풀려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여러일이 있었고.."
"예, 확실히 여러일들이 있었지요."
"게다가 부를 일이 없는게 좋은 일일지도! 여태까지 여신님의 부름 덕분에 큰 일을 막긴했지만 반대로 안부른다는건 평화로움 아닐까요?"
"평화롭다라..."
천진난만한 말에 타르라크는 한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통행증으로 시선을 돌린 그의 손길은 능숙하게 마나의 흐름을 잡아내었다.
다크나이트 특유의 파장을 작게 자른 종이 위에 고정시키는 섬세한 작업을 하는 그의 손가락이 유연하게 움직인다.
타르라크의 손끝에서 검은 불꽃이 피어오르고 종이위를 질주하며 문양을 덧그리자 포워르 특유의 독특한 파장이 종이로부터 스며나왔다. 완성된 통행증을 보며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 앗 하고 뭔가를 떠올린 밀레시안이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물론 루에리도 찾을 꺼에요. 미안해요 자꾸 던전공략에 실패해서"
"아니요, 괜찮습니다. 제가 부탁드린 일인데 이런 일쯤이야 몇번이고 다시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다만?"
<'밀레시안'>
다만 이라고 되묻는 밀레시안의 귓가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밀레시안은 멍하니 홀린 눈으로 타르라크를 응시했다. 태양의 아래선 지인의 모습은 정겹고 반가우며 그립기 까지하다.
그리움... 뭔가 혀끝에 걸리는 까끌까끌함에 밀레시안은 신경을 돌리기위해 정령을 내려다 보았다.
"불렀나요?"
'.....'
정령은 고개를 내저었다. 정령의 손가락이 가르키는 것은 제단의 중앙. 타르라크는 여전히 통행증을 들고 있는 상태로 밀레시안을 보고 서 있었다.
"타르라크?"
"제가 아닙니다"
"...응 그렇죠? 그런건 알지만"
"역시 부르는 목소리가 있지 않습니까"
"...."
밀레시안은 대답하지 않은채 정령무기를 꽉 쥐었다. 거칠고 무거운 무기의 감촉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정령의 온기가 밀레시안의 주변을 맴돌았다.
뜨거운 열기와도 같은 바람. 설원에서 부는 것 치고는 너무 따뜻한 온기였다.
"통행증.. 통행증 주세요 타르라크"
"여기있습니다. 이것을 키아던전의 제단에 바치면..."
통행증을 받아든 밀레시안은 소중한 것인양 통행증의 겉 표면을 쓸어보았다. 거칠고 낡은 종이, 방금 만든 것이 분명하것만 통행등의 귀퉁이는 너덜너덜하게 헤어져 있었다.
밀레시안에게 설명을 하던 타르라크는 천천히 말을 멈춘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소한 침묵.
어색하지 않은 고요함에 밀레시안이 눈을 감았다. 기억속 어딘가에 이러한 침묵에 괴로워하던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였다. 아니여야 했다. 눈을 뜨는 밀레시안의 눈에 불안감이 차올랐다.
타르라크가 입을 열었다.
"그것은 저의 미련이였습니다"
"...."
무거운 단어들이 밀레시안의 위로 와르르 쏟아져내렸다.
검고 딱딱한 단어들의 나열에 밀레시안의 눈이 새하얀 설원으로 돌려졌다. 그를 마주볼수가 없었다.
눈이 마주쳤을때 그자리에 서있는것이 자신의 오래된 지인일지, 다른사람일이 확신할수가 없었다.
타르라크는 그런 밀레시안을 물끄러미 보다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미 시작된 말을 , 그는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타락의 길을 걸어버린 친구를 다시 되찾고자 그 근본이 되는 다크나이트의 갑옷을 이해하려고 했었지요"
"......에요"
"하지만 그건 오만이였습니다. 다크나이트는 폭주하는 감정과 간절한 갈망으로 이루어진 존재. 이론으로만 알고 있었지만 그 위험성을 깨닫지 못했던건 제 무지의 결과였습니다"
"...타르라크, 나 아직이에요"
"조각난 갑옷을 모아올수록 당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었죠.
던컨 촌장님의, 그리고 메이븐사제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정말 큰일이 날뻔한 일이였습니다.
지금도 두 분은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 그 당시 우리는 너무 어렸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어리석고 호기심만 많은 어린아이였습니다."
"나 아직 키아던전에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평안하게 미소짓는 타르라크의 얼굴이 흐려졌다.
밀레시안은 아주 느릿한 말투로 타르라크의 말을 막아내려 애썼다. 시간대에서 벗어났다고, 그런말은 들은적이 없다고 스스로에게 지적하듯 고개를 가로젓는다.그러나 이미 늦었음을 말해주는듯 팔라라는 아주 빠른속도로 저물고 있었다.
오렌지빛으로 물들어가는 석양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고 그 모습은 마치 타오르는 용암과도 닮아있었다.
새하얀 설원이 새빨갛게 타오르는 착각에 물들어보이는 광경이였다. 뜨거웠다.타르라크에게서 시선을 때지 않고 있지만 자꾸만 그의 주변이 일렁이는 착각이 들었다.
타르라크는 하얀 로브자락으로 밀레시안의 눈물을 닦아주고 나서야 밀레시안은 입에서 터져나오는것이 흐느낌인것을 깨달았다. 용이 물고있는 보라빛 성물. 밀레시안의 발치에 그의 스태프가 놓여져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빛의 기사를 내 손으로 포워르들에게 갖다바친 꼴이였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내 이기심으로 당신을 망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
"그 뒤로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 당신이 화가난줄 알았습니다. 실망한줄 알았습니다.
나를 잊어버린줄 알았습니다. 그 길로 울라대륙을 떠나 이리아로 향한 당신의 소식을 들었을 때도, 나는 차마 편지 한 줄 적지를 못했습니다"
"...실망하지..."
"이리아에서 돌아온 루에리를 만나고 나서야, 당신이 멀리 있는 그곳에서도 나와의 약속을 잊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한번도, 그런적 없어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신은 지나치게 좋은사람이였습니다. 그걸 너무 늦게 깨달은게 내 최대의 실수였습니다."
"잊은적도, 미워한적도..! 원망한적도..!!"
밀레시안의 감정에 반응한건지 정령의 빛이 크게 일렁거렸다. 눈부신 푸른빛. 이웨카와 닮은 아름다운 빛. 오래된 정령만이 두를 수 있는 고귀한 빛. 그가 밀레시안에게 맺어준 인연. 유일하게 남아있는 드루이드의 마법의 흔적. 어느새 사라진 정령 대신 눈송이만을 붙잡은 빈 손이 아려올정도로 시렸다. 손을 접었다 폈다 하는 밀레시안의 귓가에 다정하고도 절절한 목소리가 속삭여졌다.
<'일어나십시오, 밀레시안'>
지금은 그만두어줬으면. 밀레시안은 누군지 모를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빌었다.
오늘 하루잖아요. 일년에 한번 뿐이잖아요. 딱 하루, 반나절도 안되는 시간. 그 잠깐의 꿈도 꾸면 안되는건가요?
"예, 안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말하지 않았어도 안됩니다"
푸른 달빛의 아래서 노년의 성숙한 모습이 된 타르라크는 단호하게 밀레시안의 말을 끊어냈다.
제단 자체가 자신을 밀어내는 느낌에 밀레시안은 타르라크의 로브자락을 붙잡았다. 거북한 시선과 딱딱한 분위기. 카즈윈이 느꼈던 공간이 밀어낸다는 기분이 이런것이였을까. 밀레시안은 머리위로 부는 따뜻한 바람에 고개를 들었다.
쓰다듬는 행동을 하고 있는 타르라크이지만 그 손의 온기라던가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휘날리고 있는것은 가볍디 가벼운 눈송이들뿐. 타르라크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제가, 당신의 꿈이 아니라는것을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삼하인."
"예, 오늘은 삼하인. 죽은사람이 되돌아오는 생사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날. 다 사라져버린줄 알았던 이 조각이 당신에게 닿은것 조차 신의 기적이라면 얄궂은 일입니다만.."
하얀 로브의 타르라크가 지친미소를 지으며 지팡이를 집어들었다.
순식간에 멀어진 그의 모습에 가까이 가보려 하지만 검은 눈동자의 결계가 또다시 밀레시안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발밑으로 요동치는 두개의 소용돌이. 설원의 꿈이 깨어진탓에 밀레시안은 크게 당황하며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주변을 살펴봤다.
타르라크의 뒤로 솟아오른 저세상의 소용돌이, 또 하나는 밀레시안의 뒤에서 가라앉는 에린의 소용돌이.
일찍이 알베이던전으로 이어지던 바리던전의 지하의 문 넘어의 세계. 시간은 다르더라도 타르라크와 밀레시안이 나란히 길을 걸었던 그 장소. 밀레시안은 검은 눈동자의 결계에 손을 얹고 이마를 갖다대었다. 결계의 넘어에서 은은한 열기가 전해져 왔다.
"그렇게 잘못된건가요? 누구나 과거를 회상하고 추억하는데 왜 나는, 아니 당신은 안된다는거에요?"
"잘못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이미 부러진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어도 꽃은 피어나지 않습니다."
"꽃이 피어나든 뭐가 피어나지 않는 관계 없잖아요."
타르라크는 단호한 표정으로 밀레시안의 말을 끊어냈다.
"아니요. 상관있습니다. 꺾어낸 사람이 저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그리고 가지는 당신을 이야기 하는것입니다. 밀레시안"
이해를 못하겠는건지 밀레시안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뒷걸음질 치는 밀레시안의 발걸음 사이사이로 설원의 냉기가 스며들어왔다. 겉은 차갑고 속은 뜨거웠다. 무언가가 깨어져나가는 매스꺼운 감각에 속이 울렁거린다. 밀레시안의 차가워진 뺨에 무언가 따뜻한것이 와 닿았다.
또 울고있는걸까? 그렇게 생각한 밀레시안이 자신의 볼을 만저보지만 눈물한방울 묻어나지 않는다. 슬픈데 울지 않는다. 않는거니 못하는건지 스스로도 실감할 수가 없다. 이대로 괜찮은걸까. 이렇게 무감각한데도 사람이라 할수는 있는걸까?
그렇게 다른생각으로 빠져있는 사이 어느새 결계 가까이 다가온 타르라크가 밀레시안을 내려다 보았다.
한글자 한글자, 누구를 향하는 것인지 모를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말하는 그의 눈동자는 비탄에 잠긴 녹색으로 떨리고 있었다.
타르라크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외면하고 있는겁니까? 아니면 아직까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겁니까? "
퉁하고 가벼운 소리를 내고 부딫친 스태프로부터 검은눈의 결계가 파르르 흔들린다.
"소울스트림이 당신을 수백번 더 살려내더라도 죽는 순간 그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것 처럼
생을 되감아 나이를 먹지 않는 육체를 가지고 있다고해도 당신의 영혼이 지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가는 만큼 상처입고 깎여나가고 지쳐가고 있으면서도 당신은 계속 살아나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저주와도 같이, 끊어낼 수 없는 연쇄의 고리와도 같이. 그래서 당신은 우리들을 찾아왔습니다. 늘 곁에 있을 사람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것이 나였든 이멘마하의 기사였던 이리아의 샤먼이였던 누구였던간에, 당신은 끊임없이 만나고 엮여나가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어 갔습니다. 당신이 있는 세계 이야기를, 당신이 살아가는 세계 노래를. 당신이 살아가는 에린, 이 필멸의 낙원에서의 이야기.
불멸의 밀레시안 , 당신은 그저 평범한 여행자가 아닙니다. 당신의 영혼을 채워줄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말그대로 삶을 찾기위한 여행을 하고 있는 겁니다. 누군가를 구원하게 위해, 순수하기때문에,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아무런 대가 없이 타인을 돕는게 아닌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한 본능으로. 그 마비노기온이야말로 당신의 인간성, 당신을 신도 악몽도 아닌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구원."
".....당신도 그 만난 사람중에 하나에요"
"그래서 안된다는 겁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나라는 존재가"
타르라크는 손안에 들고 있는 가면을 내려다보았다. 검고 검은 가면. 일찍이 그가 필요했던 악마의 형상이자 포기했던 인간성의 남은 조각. 가슴에 가면을 품은 타르라크가 눈을 감았다.
"모든것은 내가 놓아버린 선택의 결과. 그 선택에 후회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후회와 아쉬움이 가득한 그의 한탄이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눈부신 빛속으로 스며들어가는 그의 모습이 낯이 익다. 다른점이라고는 이곳이 용의 섬이 아니라는것, 더이상 용암이 흐르거나 마법으로 인한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것.
"나를 놓고 갈 때입니다 밀레시안."
검은 눈의 결계가 사라짐과 동시에 타르라크의 조각이 희미해져가기 시작했다. 이제 두 소용돌이 사이에 놓여있는 것은 커다란 빛무리뿐. 밀레시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 소용돌이에서 일어나는 거센기류가 서로다른 온도를 충돌시키며 더욱 날카로운 바람을 일으킨다. 그 흩어지는 바람결에 타르라크가 실려있었다.
'당신은 좋은사람입니다.. 정말로.'
<'이제 그만 일어나게'>
타르라크를 향해 다가가려는 밀레시안을 어딘지 낯이 익은 커다란 빛무리가 껴안으며 자리에 주저앉혔다.
따뜻하고 다정한 온기에 떠밀린 밀레시안은 소용돌이속에 주저앉으며 무릎에 와닿는 냉기를 자각했다.
이 손은 닿지 않을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밀레시안은 타르라크를 향해 뻗었던 손을 거두었다. 빛이 별의 손을 끌어당기었다.
차갑고 딱딱한 현실이 온몸에 스며들수록 몽롱했던 꿈의 열기를 몰아내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꿈에서 깨지 않아서였을까 눈부시게 퍼져나가는 타르라크의 빛 속에서 그리운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그저... 당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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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철컥, 하고 철로된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얼마나 오랫동안 있었던건지 온 몸이 얼어붙은것마냥 뻐근한 느낌이였다. 밀레시안이 감싸안고 있던 빛무리가 사그라드는것을 느끼며 떨어진 물건으로 시선을 돌렸다.
새까만 건틀렛의 모양이 낯이 익다. 그리고 자신을 감싸고있는 팔의 감촉도 익숙한 사람의 것이였다.이웨카를 등지고 선 금발의 머리카락이 설원의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시선을 떨어트리자 어깨 너머로 엉망이된 제단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을 잃은 드루이드의 제단이 마력을 잃고 눈으로 뒤덮여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바람을 막아서는 커다란 품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너무나도 따뜻했다. 밀레시안의 가슴팍에 닿은 갑옷을 슬며시 밀어내며 신성력의 주인을 확인했다. 더할나위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기도를 올리는 톨비쉬의 모습에 밀레시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톨비쉬..."
기사의 이름을 부르자 미동없이 둘러져있던 팔이 움찔거렸다. 천천히 멀어지는 온기와 함께 주여.. 하는 탄식이 들려왔다
너무나도 성직자다운 첫마디에 밀레시안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려놓은건지 뺴앗긴건지 허탈하면서 공허한 웃음이 어꺠를 들썩거리게 만든다. 그리고 곧 얼굴을 가린 별이 톨비쉬의 품안으로 무너져내렸다. 간헐적으로 떨리는 별의 몸이 부서질듯 약해보였다.
밀레시안을 붙잡은 톨비쉬의 손이 섬세하게 그 어깨를 감싸쥐었다.
소울스트림에서 걸러졌어야할 밀레시안의 어두운 그림자가 톨비쉬의 품 안에서 꿈틀거렸다. 두 세상의 경계가 흐려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죽은자를 추모하는 눈물이기 때문일까.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겪었는지 그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들리는 바람소리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찾는것에 급급했을뿐. 겨우 땅으로 돌아온 별을 끌어안은 톨비쉬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가...,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
"당신을 혼자 남겨두지 않을 겁니다"
톨비쉬는 밀레시안을 끌어안으며 별의 이름을 불렀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수십번도 넘게 더 불렀던 별의 이름을 되뇌였다. 오늘은 밤이 낮보다 길어지는 날들의 시작.
새로내린 눈이 건틀렛을 하얗게 뒤덮을때까지, 설원의 눈속으로 흐느낌이 희미하게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