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1일 #오블완

다시 태어난 브리샤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그린우드를 불태우는 것이었다.

 

그린우드, 애정하고 애증하고 지긋지긋한 그녀의 이름.

그들은 태생부터가 배신자였고 믿음을 양분삼아 기만을 생존의 방식으로 선택한 자들이었다.

물론 그들이라고 원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인간들을 낙원으로 이끌겠다던 누아자 왕이 패배하였기에 승자를 따라갔던 것 뿐이었고,

그 브레스 왕이 약속을 어기고 자신들을 핍박하였기에 루 라바다를 따라갔다.

루 라바다가 인간뿐만이 아닌 모든 것을 수호하였기에 인간이었던 그들은 인간의 왕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린우드는 행복했을까?

 

안타깝지만, 아니었다.

거리의 꼬마아이가 자신의 전 재산을 털더라도 솜사탕 하나 사 먹을 돈이 안 나오는 것처럼, 그린우드의 명예와 목숨을 걸고 결의한 선택들은 위대하신 영웅과 왕족과 마법사, 기사, 연금술사 나으리들이 보기에는 그리 값져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름답지도, 명예롭지도 않은 이야기. 재치있거나 기발하지도 않은 통속적인 인간의 민낯.

그들은 언제나 멸시받았고 무시당했다. 그러나 동시에 우습게 여겨지지도 못했다. 기민한 선택으로 보존한 그들의 저력과 경험은 뭇 명예만을 쫓는 귀족들의 눈에도 꽤나 날카로운 비수로 보였던 것이다. 

애초에 그들이 왜 그토록 빠르게 배신과 선택을 반복할 수 있었던가.

 

그린우드는 끈질기게 살아남은 잡초와도 같은 자들이었다. 그리고 살아남았기에 그들은 모든 것을 기억했고, 그 기억을 무기로 휘두룰 줄도 알았다.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속살거린 달콤한 말속에는 언제나 그만한 영양분이 들어있었으며 이는 누군가에게 독이기도 했고 또 누군가에게는 난관을 해쳐나갈 실마리가 되어주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때떄로 비밀을 재화삼아 그들을 찾아오기도 했다. 비밀은 비밀을 부르고, 또 그 비밀은 또다른 이의 비밀과 기요를 부른다.

그린우드는 그렇게 살아남았다. 떄로는 간신으로, 때로는 배신자로, 때로는 밀고자로, 때로는 차마 성직자를 찾아갈 수 없는 세상 밑바닥에 떨어진 자들의 보속을 도와주는 거짓된 청죄사제로.

 

아, 일생이 기만이로다. 모든 것이 거짓이로다.

 

그러나 모든 그린우드가 이 멸시받는 삶에 안주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중 누군가는 그린우드를 떠나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그린우드를 양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그들은 숲지기의 가면을 쓰고, 의사의 가면을 쓰고, 식물학자의 가면을 쓰고 선대의 그림자를 가리기 위해 노력했다.

 

희망적이게도, 이 노력은 꽤나 성과를 거두었다.

루 라바다의 퇴위와 함께 숲지기로서의 불명예를 만회하려는 선량한 그린우드들의 노력과 진실을 감추려는 ‘정통적인’ 그린우드들의 전례없는 협력으로 그들은 성공적으로 양지에 발붙이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세상은 또다시 그들에게 냉혹한 폭풍을 가져다 주었다.

 

‘탐험’

 

에일리흐 왕국의 에후르 마퀼 2세가 이리아의 탐험을 선포한 것이다.

뭇 평범하고 온건한 귀족이라 한다면 이 탐험으로 얻을 명예와 새로운 지식과 재산등을 떠올리며 신세계의 개척에 가슴이 뛰었겠지만 그린우드는 그렇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왕국이 울라대륙이 아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여력을 드러냈다는 것은 곧 이제까지의 평화와 안정이 흐트러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평화롭기 때문에 여력이 쌓인 것이 아니냐고? 틀렸다. 그건 결과일 뿐이다. 진정한 평화는 그들이 여유를 가진다는 것 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갈증을 느끼지 않는 이가 구태여 물을 찾아 소파를 떠나지 않는 것처럼 평화롭고 풍요로운 자들은 구태여 그들의 안락한 왕국에서 나가려하지 않는 법이었다.

 

그러니 탐험이란 결국 전쟁의 또다른 이름이요 주인없는 땅에 함부로 발을 내딛기 위한 명분에 불과했다.

애초에 그들이 정말로 연구와 조사를 위해 그곳에 찾아간 것이라면 귀족들 사이에서 ‘기념’을 위해 가져온 유물들이 유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리아의 이름모를 선주민들의 유물들은 그들의 전리품이었고, 이종족과의 교류는 운이 좋아 전쟁없이 성립된 ‘동맹’이었다.

만약 그 이대륙의 이종족들이 서로 싸우지 않았다면 그들이 서로 자신의 선조들의 유산이라 부르는 유물들을 약탈해가도록 내버려둘리 없었을테니까.

그리고 자신들의 정당한 행위를 방해받은 에일리흐 왕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테고 이는 결국 ‘포워르’를 상대하던 전쟁이 ‘이대륙’으로 옮겨진 것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결국 유혈사태가 없었고 학문적인 교류로 성공적으로 포장했으니 다 잘 된 것 아닐까?

아니었다. 이 역시 결과에 불과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단순히 뛰어난 무력을 가진 영웅과 상징적인 지도자뿐이었다면, 아름다운 빛의 기사 루 라바다는 기사가 아닌 암살자가 되었을 것이다. 모이투라 전쟁에는 수많은 병사들과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기 위한 수많은 보급품들이 필요했으며, 이를 운송하기 위한 인력과 그 인력을 보호하기 위한 또다른 무력집단을 필요로 했다. 또 그들을 고용하기 위한 중개자가 필요했으며 또 그 중개자들을 모아서 관리하는 전문 인력이 필요했다.

이토록 하나하나 말하자면 골치아픈 모든 것을 뭉뚱그려 부르는 이름은 바로 ‘돈’이었다.

 

그렇다. 돈. 

사람을 움직이는 것에는 돈이 든다. 그리고 전쟁에는, 아니 탐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동시에 이 모든 것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커다란 흐름에는 언제나 높으신 분들이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나 사고들이 발생하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에후르 마퀼 2세는 너무 운이 좋은 왕이었다.

혜성같이 찾아온 우연, 밀레시안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에일리흐 왕국은 공식적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지만 그린우드는 ‘포워르’와의 전쟁이 어느 순간 인간쪽으로 기울어 진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여신상의 복구를 위해 뛰어다녔다는 정보로부터, 그들이 이멘마하의 근위대장에게 항마의 로브를 부탁했다는 것까지. 이리아의 이종족과의 교류를 트는 것에 앞서 신뢰를 쌓은(달리말하면 그들의 자질구레한 부탁들을 들어주며 비위를 맞춰준) 모험가들 사이에도 밀레시안들이 있었으며 잊혀진 드래곤들의 땅, 자레스에서 일어난 ‘재해’를 진정시킨 것도 결국은 밀레시안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래왔든 영웅의 행보는 그린우드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 차치하고, 다시 생존의 문제로 돌아간다면..

그린우드는 에후르 마퀼 2세의 운을 믿지 않았다. 그는 노련한 정치가였지만 전쟁을 승리로 매듭지을 영웅은 아니었으며 그의 딸 또한 그리 미래가 밝아보이지 않았다. 하여 그린우드는 다시한번 생존을 위해 ‘선택’을 결심하려 했으나 이번에는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났다. 루 라바다의 퇴위 이후, 더이상의 ‘선택’은 없을거라며 양지로 뿌리를 뻗었던 그린우드들이 이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의 시대, 넘쳐나는 풍요로 인해 이대륙으로 눈을 돌릴 만큼의 여유가 생긴 태평성대.

그 여유는 그린우드에게도 번영을 가져왔고 그들에게는 이제 잃어버릴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이 생기게 되었다. 이전과 같이 곁눈이 달린 가지 하나만 잘라 숲을 버리고 도망치듯 재빨리 ‘선택’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고와 눈에 그릴듯 선명한 재앙을 두고 한참을 다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발전없는 ‘선택’의 반복을 지양하는 대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합의했다.

합의의 단초는 다름아닌 ‘배신’이라는 키워드에서 나온 또다른 배신자의 이름이었다.

 

라이미라크 교단. 그 누구도 감히 그들을 두고 자신들과 닮았다 비교하지 않으려 하겠지만 그린우드만큼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라이미라크 교단이 누아자 신을 두고 도망쳤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동시에 그 기록을 모두 말소하려 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그 시기를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후회할지언정 그 날의 수치를 다시 기록하려들지 않는다는점에서 그들은 결국 거대한 이름을 등에 업은 사람이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선택’을 반복하는 인간들의 집단이었다.

 

그렇기에 그린우드는 생각했다. 그들의 ‘선택’과 우리들의 ‘선택’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린우드는 깨달았다.

 

그들에게는 ‘거대한 이름’이 있었다.

그들의 허물을 가려주고 때로는 용서해주고(실제로 죄를 청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흐려진 눈앞을 대신하여 길을 일러줄 위대한 의지.

때문에 그들의 ‘선택’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사람의 행동에 불과하였으나 사람들은 스스로 이 ‘선택’을 신의 뜻이나 범인들은 잘 이해하기 힘든 먼 미래의 안배로 선해해주고는 했다. 교단은 상황에 따라 이 오해를 내버려두기도 했고, 오히려 만류하거나 부추기기도 했다. 

그중에서 그린우드가 주목했던 것은 ‘사람들의 오해’를 정정하면서도 진실은 밝히지 않고 넘어가는 처세술이었다.

 

사람과 기적. 그리고 그 사이에 세워진 믿음이라는 벽.

그린우드는 선해로 이루어진 오해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그것이 꼭 ‘선의’로만 이뤄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쌓인 신뢰가 그들의 것일 필요도 없었으며, 난해한 안배가 그들의 계획일 필요도 없었다.

그린우드는 자신의 일족들에게 설명했다.  ‘신성’을 찾으면 되는 일이다. 

 

그들의 선택을 정당화해주고, 바로세워주며, 허물을 가리고 명예를 지켜줄 ‘거대한 이름’이라는 벽.

오래 된 이름이자 믿음으로 만들어진 허상.

누가보아도 자의로서 선택한 일을 저지르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라고 대답해줄 핑계거리가 되어줄,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납득할 수 있는 이유.

 

그리고 그것 아는가? 신앙은 항상 곧고 올바른 것으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그리하여 그것이 어그러졌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 또한 기도가 될 수 있으며 이러한 것을 받는 초월적인 존재 또한 이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린우드는 그 이름을 찾아 다시금 음지로 시선을 돌렸고 그곳에서 글린드라흐를 만났다.

양지에서는 별볼일 없는 한미한 가문이지만 음지에서는 지혜로운 자로 통용되는 빛나는 이름, 그들은 ‘황금’과 ‘지혜’을 숭배하는 어느 사교의 추종자들이었다.





그린우드가 글린드라흐의 손을 잡은 이유는 그들이 사교도이면서도 신에게 모든 것을 헌신 하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 중에 맹신을 넘어 광신하는 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은 개인의 선택일뿐, 그들은 모두 개인의 황금과 가문을 번영을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지 믿음에 심취하는 자들이 아니었다.

 

뿐만일까, 그들의 신조차도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경애와 헌신을 맹세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간단하면서도 기묘했다. 그들의 신은 원래부터 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 그러니까 신들의 세계보다도 더 먼 경계 너머에서 온 자이며 그가 말하는 경계라는 것은 단순한 공간의 의미가 아닌 시간의 의미 또한 포함하고 있었다.

즉, 그는 아직 이곳에 도착하지 않았으나 이미 존재하는 자라는 게 그들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그의 능력은 신과 비교하여 부족함이 없었기에 사람들은 그를 신과 비슷한 것으로 여겼고, 그 믿음은 그의 재화가 되어 이곳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의 기반이 되었다. 

그렇게 이계에서 발현하여 이곳에서 신으로 불리게 된 이계의 존재는 스스로를 ‘무대장치의 조율자’라고 칭하게 된 것이다.

 

글린드라흐는 이어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돌아다니며 시간과 공간, 중첩된 세계와 이미 도달한 시간대의 확정적인 사건(event)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광기와 확신이 뒤섞인 목소리,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눈동자. 그린우드는 그가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부터 이미 흥미를 잃고 그의 행동과 표정을 관찰하는 중이었기에 그가 심취하여 떠는 꼴을 내버려두었다.

다만 이 모든 상황을 통해 그린우드는 가까스로 그들이 어떻게 ‘광신’과 ‘거래’를 동시에 가지고 있을 수 있는지를 이해했다.

 

경애나 존경, 헌신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토록 좋은 변명이었던 것이다.

애초에 그들의 신은 우연히 이 세계에 찾아온 이방인이 아니었고 선의로 사람을 돕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다른 따분한 사교도들과 달리 사랑과 믿음이 아닌 복종과 종속으로 하수인을 구하고자 한 것 뿐이었고 강압에 앞서 충분한 보상을 먼저 퍼붓는 방식을 선택했다.

 

설령 그것이 받는자의 그릇을 벗어나 넘쳐 흘러버릴지라도.

일례로 글린드라흐의 지식은, 이미 인간이 감당 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 있었다.

그러나 알기를 멈추지 않았기에 그는 미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진실을 추종했고, 결국 이렇게 가장 가까이서 ‘조율자’를 이해하는 사교도들의 수장으로 전락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글린드라흐의 이름을 이은 모든 가주들이 원하여 맞이한 결말이라는 점이었다.

아니, 어쩌면 인과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결말을 감수할 수 있는 자가 글린드라흐의 가주가 되는 것이었던가, 혹은 그러한 자의 머리에 가주라는 이름을 씌워놓고 대리하는 자가 있었던가.

그린우드는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 그들과 맺을 계약에만 집중했다.

 

그린우드가 원하는 것은 간단했다. 그들은 맹신도 지식도 명예도 원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어떠한 선택을 했을 때 그것을 대신 설명해줄 ‘이름’을 원했다.

그들의 이유를, 행적을, 행동원리를 설명하지 않고 모든 것을 설명해줄 압도적이고도 절대적이면서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난해한 것.

허구이면서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터무니없으면서도 감히 누군가 그것을 비웃으며 그린우드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

 

터무니없게 들리는 조건들이었지만 놀랍게도 세상에는 만족시키는 해답이 복수로 존재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앞서 그린우드가 찾던 ‘신앙’이었고 또 하나는 ‘사랑’이었다.

그들의 계약은 정략결혼이라는 형태로 맺어진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동시에 두 가문의 갑작스러운 협업을 변명하기에 좋으면서 서로의 결속을 확인하기에 아주 좋은 수단이었기에 이 기발한 계획을 반대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먼 훗날에 자신의 결혼상대가 미리 정해졌으며, 그것이 저 비굴한 페르하레 글린드라흐라는 것을 알게된 브리샤가 연회장에서 그의 코뼈를 박살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래서 그린우드는 행복해졌을까?

실제로 그린우드는 글린드라흐와의 동맹으로 훨씬 더 부유해졌고 큰 영향력을 갖게되었다. 그 성장의 대부분은 음지에서의 성장이었지만, 결국 위로 갈 수록 그림자아래서 일어나는 일들이 더욱 긴밀해지기 마련이니 이는 미래를 대비한 성장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또한 시간이 흐르며 탐험의 열기가 시들어졌고 그림자 세계의 확장으로 다시금 위기가 되살아나자 에일리흐 왕국은 그들의 칼날을 포워르들에게로 돌렸다. 이는 그린우드가 다시금 전선에, 아니 왕성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선택’을 서두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브리샤 그린우드가 결국 제 생애에서 페르하레를 떨쳐내지 못했던 것과 같이 계약은 계속되어야만 했다. 또한 이 계약은 상호의 이득을 원한 것이었기에 이제 이 계약의 이득은 글린드라흐의 것만 남아있는 것이다 다름없었다.

그것이 여태까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유는 글린드라흐가 원했던 것이 오직 하나, 계약의 결과 그 자체인 그린우드와의 동맹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왜? 왜 글린드라흐는 그토록 그린우드와 함께하려 했던 것일까. 

해답은 간단했다. 모든 음지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양지에 자리잡기를 희망했다. 동시에 그들은 결국 ‘조율자’의 추종자였기에 그들이 양지로 나아가 영향력을 넓히는 것은 ‘조율자’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는 자신들은 결코 추종자따위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라 자만하는 그린우드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잊었는가? ‘조율자’의 계약은 마치 공평한 거래인듯 보이면서도 결국은 그에게 종속되어 하수인이 되는 결말밖에 없는 함정이었다. 그리고 글린드라흐와의 계약도 결국은 ‘조율자’의 계약과 다름이 없었으니 글린드라흐의 조건이자 목적은 그린우드라 하여도 자신들이 함께하는 이상 잠식당할 수 밖에 없음을 자신하는 선언 그 자체였다.

 

애초에 그린우드의 자신감은 ‘평범한 인간’을 기준으로 세워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대항할 수 있다 생각했던 것은 신에 비견하는 이계의 지혜였고 그 착각은 그린우드의 방심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충격적이고 혁신적인 지식은 경계했지만 일상에서 스며나오는 달콤한 위로와 이해해는 취약했던 것이다.

언제나 완벽한 순간에 찾아오는 다정하고 안락한 이해자의 손길은 너무나도 손쉽게 그린우드의 이름을 가진 자들을 함락시켰다. 가문에서 외면받는 어린 사생아부터, 그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고자 홀로 고군분투하는 외척, 어떻게든 공훈을 세우려는 방계출신의 입양아, 자신의 판단력과 경험을 자신하는 늙은 그린우드들까지.

글린드라흐는 그들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상처입은 영혼을 보듬으며 천천히 그들을 ‘기쁘게’만들어 나아갔다.

 

천천히, 아주 부드럽고 고요하게. 

애정에 굶주린 그린우드 따위 갓난아기와 눈을 마주치는 것보다 쉬운 일이지.

 

딱 한 뼘. 글린드라흐가 그린우드를 기쁘게 만들기에 필요했던 조건은 딱 한 뼘의 거리에서의 대화뿐이었다. 그리고 정략결혼을 매개로한 계약이 이를 보장하고 있었으니 결국 그린우드의 타락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렇게 ‘생존’만을 위해 뭉쳐있던 그린우드는 뿔뿔히 흩어져 글린드라흐의 손아귀에 들어가 각자 다른 곳에서 ‘조율자’의 추종자를 위한 꼭두각시가 되어갔다. 스스로의 이득도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헌신하는 추종자의 추종자가 된 것이다.

 

브리샤 그린우드는 자신의 미래를 속단하고 바보같은 페르하레를 떠넘긴 주제에 스스로 망해가는 그린우드를 증오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고자 했던 그들을 연민했고 그 본능을 공감했다. 

살아남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괴롭고 쓸쓸하여 온기를 찾으려 했던 것이지.

 

그녀가 ‘거울’을 피해 ‘나무’의 손을 잡은 것도 결국은 그린우드의 본능이었다. 어차피 침몰할 것이라면 나는 이 한 손을 그들의 적에게 보태리라. 그리하여 살아남는다면 그들의 승리였고 그리하여 죽는다면 여한또한 없게 되겠지.

 

그래서 브리샤 또한 나무안에서 깨어나며 전생의 한을 버렸다. 동시에 그들이 왜 이것을 다시 태어난다고 표현하는지 이해했다.

그래, 이런 방법이기에 이미 거울에 묶여버린 영혼을 온전히 ‘나무’의 것으로 가로챌 수 있었던 것이었다. 평범한 인간이었던 브리샤 그린우드는 영혼조차 남기지 못하고 나무의 일부가 되어 죽었다. 아마 멍청한 페르하레가 어떠한 희생양을 꾀어내어 거울에 ‘브리샤의 행방’을 묻도록 시킨다면 거울은 이렇게 대답하겠지.

 

[오만한 브리샤는 나무 속에서 썩어 문드러져 한 줌의 흙이 되었다.]

 

또한 이 대답에 납득하지 못한 탐욕스러운 페르하레가 자신의 이복형제에게 달려가 ‘조율자’의 지혜를 구해달라 간청한다면 새로운 글린드라흐의 가주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대답을 구해주는 건 어렵지 않지만, 이제 슬슬 형도 돌아와야하지 않겠어? 그 이상 거울에 붙잡히면 이제 남겨진 영혼의 조각만으로는 일상생활조차 불가능해질지도 몰라.]

 

브리샤는 페르하레가 예의 그 멍청한 표정을 지을 것을 떠올리며 웃었다. 바보같은 페르하레. 글린드라흐가 그를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아껴왔던 이유는 그가 그린우드를 붙잡는 덫의 ‘바늘’의 역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꿰인 브리샤 그린우드가 도망쳤고 그 덫에 잡혀있던 그린우드도 거진 그들의 손에 떨어졌으니 이제 그에게 무슨 쓸모가 남아있을까.

 

아, 물론 글린드라흐의 성공을 축하하는 기념품으로 그 멍청이를 전시해 둘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념품을 어느 방에 전시해 둘지는 글린드라흐의 가주의 손에 달려있고, 광기에 스스로를 불태운 전대 글린드라흐를 대신하여 진짜 ‘아들’을 위하여 제물로 바쳐지다시피한 새로운 글린드라흐가 그를 그리 좋은 곳에 전시해두지는 않을 것은 분명했다.

 

애초에 경솔한 페르하레의 손에 ‘가위’를 들려준 것부터가 이미 노골적인 의사표현이나 다름없었다.

단순한 페르하레는 그 가위가 인과에 간섭하여 거울에 종속된 영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자신있게 거울 앞에 얼굴을 비춘 모양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가위의 용도는 인과라는 모호한 개념을 잘라내는 것이 아닌 영혼 그 자체를 잘라내는 것이었다.

다만 그것이 거울에 종속된 ‘영혼’을 잘라내어 ‘원인’을 제거한 것이기에 결과적으로 인과에 ‘간섭’한다고 표현한 것일뿐. 

때때로 부작용으로 상대의 성격이 지나치게 온순하게 변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상실된 영혼으로 인해 자아가 흐려진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 멍청한 페르하레가 이러한 세세한 내용을 귀담아 들었을리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 날을 세우는 브리샤 그린우드가 온순해질 수 있다니 오히려 좋다며 손뼉이나 쳤겠지.

게다가 어째서인지 자신만큼은 항상 안좋은 결과에서 빗겨나가고 좋은 결과에는 들어맞는다 자신하는 사람이었으니 그 때때로 일어나는 부작용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게 뻔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아버지의 희생으로, 친족의 굴종으로, 그리고 그린우드와 제 이복동생을 제물삼아 가장 좋은 대가만 누려왔던 글린드라흐의 ‘기쁨’이었으니까.

 

브리샤는 나무속에서 녹아내리고 부서지고 다시 재조합되는 동안 생각하고 통찰하고 내다보았던 모든 것을 눈으로 확인하며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에 대하여 행하리라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현실로 만들어낸 뒤 마지막 마침표로서 손에 들려있던 랜턴을 내던졌다. 기름에 흠뻑 젖다못해 흥건히 괴여버린 그린우드의 정원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발 아래 쓰러져있던 어린 글린드라흐의 가주는 피거품이 섞인 기침을 토해내며 아직 불이 옮겨붙지 않은 기름묻은 풀을 움켜쥐었다.

 

“어.. 어떻게.. 분명 당신은…”

 

“거울에 붙잡히지 않았냐고? 이상하네, 페르하레가 내 이야기를 일러 바치지 않았어?”

 

“.........”

 

“아하, 꼴상을 보아하니 페르하레가 네 대답을 듣고 ‘거울’로 도망친 모양이구나. 정말 다행이다. 내가 정원에서 조금만 더 늦장을 부렸다면 복수할 글린드라흐가 알아서 자멸할뻔했겠어?”

 

탈출의 직전 브리샤에게 붙잡힌 글린드라흐는 더 이상 어떻게라고도 되묻지 않은채 다 죽어가는 눈으로 브리샤의 보석같이 빛나는 눈동자를 응시했다. 브리샤는 이지경까지 몰려서도 어떻게든 이 상황을 이해해보려는 글린드라흐에게 자비를 배풀고자 그의 머리를 기름묻은 손으로로 쓰다듬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 분명 ‘정답’만 골라왔는데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지? 내가 다 설명해줄게.
우선 첫번째로, 글린드라흐의 몰락은 다 너희들의 전대 가주 떄문이란다. 너의 형편없는 아버지가 페르하레 그린드라흐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조율자’에 의존하여 살아왔던 글린드라흐를 무리하게 양지로 올려보려고 했거든. 아마 뒷세계에서는 도련님 도련님하다가 연회장에서 무시당했던 자신과 같은 수모를 당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지.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아예 너희가 스스로를 갈아넣던 광기속에 우리를 대신 넣지 말았어야지. 

그게 두번째 오답이야. 너희가 그린우드를 잡아먹기 위해 전대 글린드라흐의 수명을 깎아먹지 않았다면 네가 이렇게 빨리 글린드라흐의 제물로 바쳐지지도 않았을거야. 그리고 조금만 더 공을 들여 너를 교육시켰더라면 감히 ‘사랑스러운 페르하레’를 대신하여 가주의 이름을 붙인 희생양따위가 그에게 ‘가위’를 건네줄 생각따위는 떠올리지도 않았을거고. 그리고 ‘가위’를 얻지 못했다면 멍청한 페르하레가 이토록 빠르게 ‘거울’ 앞에 나서지도 않았을거야. 설령 그가 거울을 써보겠다고 억지를 부리더라도 대안책으로 다른 ‘도구’를 권하며 시간을 벌어볼 수도 있었겠지.
아, 물론 근본이 썩어도 너무 썩은 자식이니 네게 ‘교육’따위로 지워지지 않을 원한이 세겨져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래도 결과는 똑같아. 네가 조금이라도 더 경험을 쌓았더라면, 그렇게 섣부르게 페르하레에게 네 계획을 드러내지 않았을거니까. 혹은 그가 ‘조율자’의 광기를 받아들이기 싫다는 이유로 ‘거울’에 제 영혼을 내던지는 멍청이라는 사실을 조금 더 빨리 깨달았을 수도 있고.”

 

신랄하다못해 경쾌하기까지한 목소리와 달리 브리샤의 눈은 무기질적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연민도, 증오도 아닌 모호한 시선을 마주하며 글린드라흐는 마지막 기력을 쥐어짜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다…하다못해...”

 

“내가 대신 네 원한을 갚아주면 안되냐고? 그건 안돼. 이유는 세 가지나 있으니 네가 죽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말해줘 볼게. 일단 첫번째로, 우리가 페르하레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동질감을 공유하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고해서 네 원한까지 대신 갚아줄만큼의 연민을 느낀 것은 아니야. 네가 내 복수에 멋대로 만족하는 것은 말리지 않겠지만 그걸 부탁할 처지는 아니라는거지. 두번째로, ‘나무’는 ‘거울’에 멍청한 녀석이 좀 더 살아서 붙어있기를 원해. 그가 실수를 저지르든 난동을 피우든간에 ‘나무’는 ‘거울’이 흐트러질 가능성을 가능한 남겨놓고 싶어하고 있거든. 세번째로… 어, 이런 죽어버렸네.”

 

브리샤는 아아~ 하고 과장된 아쉬움을 표현하며 그의 곁에 주저 앉아 불타오르는 테피스트리를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한번 죽어보니까 알겠더라. 살아있을 때는그렇게 괴롭던 모든 것들이 막상 죽을 때가 되니까 전혀 생각이 안나. 그냥 춥고 졸립기만해. 그리고 무겁다는 느낌도 전부 사라지고 한없이 가볍고 가벼워서 마지막에는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게 느껴지지.”

 

마치 보석을 깎아 만든 의안처럼 기묘할정도로 빛을 과하게 반사하는 브리샤의 눈동자는 명백히 인간의 것이 아닌 질감과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브리샤는 그 눈으로 불타오르는 그린우드의 저택을 그리고 그 불을 옮겨붙어 커다란 캠프파이어마냥 타오르는 아름다웠던 그린우드의 온실을 올려다보다가 환하게 웃으며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보석안에는 죽은 몸에서 스르륵 몸을 일으키는 어린 글린드라흐의 영혼이 비치고 있었다.

 

“그러니 나도 너희가 생각했던 거랑 똑같이 해줘야겠더라고. 마침 길레아스바이그도 그를 죽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어서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했는데 이런 방법이 있었지 뭐야?그러니 안심해, 글린드라흐. 너의 ‘가주’의 의무는 무사히 페르하레에게 전달될거야.”

 

무표정하게 몸을 일으킨 글린드라흐는 천천히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는 우리의 곁에서 이계의 지혜를 속삭이는 제물이 되어주겠지. 네가 글린드라흐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역대 글린드라흐의 가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글린드라흐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안쪽은 아주 새카만 먹물빛이라 속내가 비쳐보이지 않았지만 어린 글린드라흐의 영혼이 기뻐하고 있다는 의미만은 충실하게 전달될 수 있었다.

 

“영원히. 잠들지도 못하고 따뜻하게 보온된 그 나무속에서…”

 

그리고 그 기쁨은 글린드라흐의 것이 아닌 그 너머에 있는 것. 글린드라흐의 안에 깃든 광기가 속삭였다.

 

가 그걸 허락해줄거라고는 생각하고?’

 

동시에 브리샤는 처음부터 대화를 나누는 상대에게 대답하듯 고개를 끄덕여보이며 속삭였다.

 

“‘나무’가 아닌 나를 위해서 떠들어준다면.”

 

‘.........’

 

호오, 라고 추임새를 넣듯 어린 글린드라흐의 영혼이 눈썹을 치켜들었다.그리고는 제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브리샤의 얼굴앞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브리샤는 글린드라흐의 반투명한 눈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영혼의 냉기에 얼어붙은 새하얀 입김으로 입가를 감춘 브리샤는 이제 거의 쇳소리를 흘려내듯 작아진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말했잖아, ‘조율자’님. 그들이 하려는 것과 똑같은 짓을 할 거라고. 당신은 나를 매개로, 나는 그자를 매개로. 우리는 당신의 협력을 원해. 그리고 당신은 ‘이҉̙̬͇̫͚̓̎̿̐̾야҉̨̝̭̌̐̀͠기҈̛͓̘̜̫͛́̚͢를 원하지?”

 

‘...........’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줄테니 ‘지혜’를 거두어갈지 말지는 그 다음에 선택하도록 해. 하지만 장담하건데, 는 아주 재미있을거야. 그 멍청하고 지루한 글린드라흐들과 다르게 말이야.”

 

어린 글린드라흐의 영혼의 탈을 쓴 ‘조율자’는 한참동안이나 브리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냉기가 사라지며 부릅뜨고 있던 어린 글린드라흐의 눈이 감겼다. 눈을 감은채로 글린드라흐의 영혼이 말했다.

 

좋아. 지켜보도록 하지.’

 

동시에 어린 글린드라흐의 영혼이 황금으로 변이되는 이적(異跡)이 행해졌다. 부유하는 특성을 잃고 땅으로 떨어진 어린 글린드라흐의 영혼이었던 것은 산산히 부서져 황금의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마치 그들의 선조, 글린드라흐중 최초로 ‘조율자’의 추종자가 되었던 가주가 자신의 어린아들을 제물로 삼아 황금을 얻었던 첫 거래 때의 모습처럼.

 

브리샤는 그것을 전통삼으려는듯 필요도 없는 황금을 챙겨준 ‘조율자’의 행동을 내려다보며 폭소했다. 그리고 그 웃음은 한참동안 이어져 저택의 불길이 최고조에 달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브리샤가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이튿날 새벽, 사람들의 눈을 가리던 장막이 사라져 저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탄 내음이 사방으로 퍼져나기 시작할 무렵의 일이었다. 브리샤는 전날 보다 붉어진 눈으로 새까맣게 타버린 저택을 응시하다가 숲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자신을 잊지 말라는듯 발치로 스스로 굴러오는 황금 한 덩이를 경멸스럽게 노려본뒤 어쩔 수없다는듯 그것을 주워 숲으로 들어갔다.

 

불 탄 저택을 확인하러 달려온 사람들이 남아있는 황금을 발견하고 이를 서로 가지려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