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비밀레)약속 (마비노기전력60분)
30분 지각
과거설정날조, 캐릭터날조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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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시안, 그래서 어느쪽입니까"
"조금, 양심이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톨비쉬가 양 손에 사복을 든 상태로 밀레시안의 앞에서 서성거렸다.
한쪽은 장식없는 검은 와이셔츠, 다른 한쪽은 하얀 셔츠에 작은 보타이. 언젠가 꿈에서 본듯한 붉은 가디건을 매치시킨 톨비쉬는 역시 타이는 남색이 좋을까요? 하고 이미 마음을 정한듯 옷을 위아래로 훑어내렸다. 밀레시안이 의욕없는 얼굴로 소파에 누운채 톨비쉬를 올려다 보았다.
"지금 다른사람이랑 데이트 가야한다고 나한테 옷을 골라달라는게 말이 돼요?"
덧붙여서, 밀레시안은 내일 톨비쉬와 같은 휴무상태. 데이트 약속을 잡으러 왔다고 생각한 연인은 대뜸 밀레시안을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서는 때아닌 패션쇼를 열며 밀레시안의 속을 박박 긁고 있었다.
톨비쉬가 서운한 표정으로 양손에 있던 옷들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내일은 정말 잘보여야 한단말입니다"
"내 취향이면서 요즘 여성들에게 먹히는 의상이라니. 일단 난 밀레시안이고, "
다난들과는 유행감각이 다르다구요. 라고 말하는 밀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지 톨비쉬는 검은색 와이셔츠에 붙은 먼지를 때어내다가 밀레시안을 돌아보았다. 눈길이 빠르게 흰 셔츠로 갔다 돌아오는것으로 봐서 아주 약간의 망설임이 그의 결정을 붙들고 있는 모양이였다.
"당신은 이쪽취향이였죠?"
"마치 내가 금발에 검은색이면 다 좋아하는 것 처럼 말하는데... 네 맞아요. 뭔가 억울하지만 당신 얼굴엔 검은색이 잘 받는다구요"
"하지만 첫 데이트인데 검은색은 조금..하지만 당신 취향이 가장 중요한데.."
"당신 나랑 데이트 나갈때도 그거 입었거든요?"
"음...."
밀레시안이 기가 막힌 목소리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톨비쉬는 여전히 귓등을 닫은상태. 엘프도 아닌 사람이 귀를 반으로 접은걸까? 싶을 정도로 마이웨이형 사고 방식에 밀레가 톨비쉬에게 다가가 셔츠를 집어들었다. 검은 셔츠는 소파에, 하얀셔츠는 밀레의 손에.
"이거 입어요, 바지는 이거. 벨트는 이거"
"음..."
"가디건도 줘봐요"
밀레시안이 가디건의 색을 바꿔버린뒤 톨비쉬에게 내밀었다. 남청빛으로 변해버린 가디건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는 톨비쉬에게 보타이를 빼앗으며 밀레가 가볍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건 압수"
"갑자기 의욕적이시네요."
"연인이 있다는것을 티내는 방법은 여러가지니까요"
가디건의 색을 바꾸는거요? 라고 되묻는 톨비쉬의 정강이를 가볍게 걷어찬 밀레시안은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흥, 하는 가벼운 콧방귀와 함게 대답할 생각이 전혀 없는 제스쳐였다. 톨비쉬는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골라준 옷을 주섬주섬 옷걸이에 걸어 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향수는요?"
"저거"
잠시 밀레시안의 표정이 험악해졌다가 당연하다는 손짓으로 선반위에 올려진 작은 병을 가르켰다. 두말할것도 없이 밀레시안이 선물했던 향수. 온몸에 보이지 않는 도장을 찍는줄도 모른채 톨비쉬는 병을 집어 잘 보이는 탁자위에 올려놓고는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밀레시안에게 팔을 벌려보이는 톨비쉬의 미소에서 뭔가 거무스름한 꿍꿍이가 느껴졌다.
"역시 당신에게 물어보기를 잘 했네요"
"내가 물어보는건 하나도 대답해주지 않고 말이죠"
토라지지 말아요. 라고 속삭인 톨비쉬가 밀레시안을 뒤에서 껴안으며 뺨에 입을 맞추었다. 한번, 또 한번, 연거푸 짧은 버드키스를 반복하며 애정가득한 스킨쉽으로 밀레시안의 기분을 풀어주려 애쓰는 톨비쉬가 돌아보는 밀레의 이마에 꿍 하고 머리를 맞대며 웃음지었다.
"잘 다녀올께요"
"뒤에서 따라갈껀데?"
당연하지 않냐는 밀레시안의 뻔뻔함에 톨비쉬가 다시한번 검은 미소를 지었다.
"쉽지 않을껄요"
밀레시안이 눈을 가늘게 흘겼다.
톨비쉬가 아침 일찍 향한곳은 이멘마하의 광장.
평소의 사복보다 한톤 차분해진 톨비쉬가 벤치에 앉아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밀레시안이 코디한 옷 그대로 입고나온 톨비쉬는 파란 가디건의 소매를 들여다보다가 피식웃고는 다시 북쪽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톨비쉬의 시선 뒷쪽에서 가발에 모자까지 눌러쓴 밀레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오렌지주스를 빨아올렸다.
"누님, 오늘은 미행이야?"
"조용히해요, 프레이져"
"......"
밀레시안의 날이 서있건 말건 톨비쉬의 표정은 설렘 그 자체. 밀레시안과 처음 데이트를 했을때 조차 저렇게 안절부절하지 못했던것 같지 않은데 오늘의 톨비쉬는 마치 수줍은 소년이 된것 마냥 손끝을 초조하게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정각이되자 벌떡 일어나는 톨비쉬가 깍듯한 인사를 건네며 누군가에게 다가섰다.
보라빛 숄을 두른 은발의 노 부인이 익숙하게 에스코트를 받으며 톨비쉬에게 고개를 까닥였다.
오늘의 데이트 상대의 등장이였다.
"요즘 여성이라고 했잖아? 내가 저만큼 늙어보여요?"
"누님, 속알맹이는 늙었잖아"
"시끄러워요, 프레이져"
밀레시안은 자신이 말을 걸었다는 것도 잊어버린채 불만 가득한 얼굴로 빨대의 끄트머리를 씹어대었다. 프레이져가 억울한 한숨을 내쉬며 부엌으로 돌아갔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 딱딱한 인사로 시작하는구나"
"하하하. 좀 더 다정하게 시작할 껄 그랬나요?"
북쪽분에 보라빛이 어른거렸을때부터 이미 포장을 부탁한 붉은 장미 꽃다발이 노 부인의 품에 안겨졌다. 부인의 숄과 색을 맞춘 보라빛 리본이 인상적인 작은 꽃다발이였다.
"흐음, 붉은 장미라. 너무 올드하지 않니?"
"장미는 늘 옳다고 하더군요"
"향기는 좋구나"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꽃다발의 향기를 맡은 노부인이 살짝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톨비쉬가 다정한 미소와 함께 팔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공연장으로 갈 생각인듯 가벼운 잡담과 함께 레스토랑을 등진채 광장 반대편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밀레시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개 주세요"
"어머, 점심먹기전에 벌써부터 군것질이니?"
"과자가 들어가는 배는 따로 있다면서 늘 여기서 먹을것을 사서 들어가거든요"
"별로 격식을 차리는 공연은 아닌가보구나"
갓 튀겨나온 따끈한 츄러스 두개를 받아든 톨비쉬가 노부인과 함께 공연장에 들어섰다.
모험가에게 개방되어 있는 공연장은 으례것 그래왔듯이 듬성듬성한 관객들로 적당히 북적이는 상태. 무대위에서 소리굽쇠로 조율을 하는 가수도 모험가인듯 나풀거리는 천옷 아래로 강철로 만들어진 건틀렛이 엿보였다. 노부인은 그런 언밸런스함이 즐거운듯 연신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가렸다. 톨비쉬가 건내온 바삭한 과자의 달콤함이 노부인의 기분을 더욱 즐겁게 만들었다.
"맛있구나. 조금 기름지지만"
"여기 이것도 같이 드셔보세요"
노부인이 톨비쉬가 내민 커피를 홀짝이는동안 조율이 끝난 가수가 부드럽게 현을 뜯기 시작했다. 시작한다는 말도 없고 조명을 달라는 말도 필요없이 그저 개인의 재량으로 시작된 음율이 공연장에 감돌기 시작하자 방금전까지 저마다의 이야기를 꽃피우던 관객들이 하나둘씩 미소를 머금은채 목소리를 낮추었다. 뒤늦게 합류한 살루모의 음색이 류트의 선율사이로 끼어들어오며 제 소리를 과시했다. 가볍게 드럼이 더해지자 은은했던 음악소리에 살짝 흥이 더해지며 밀레시안들의 음악이 공연장에 가득차올랐다. 서문으로만 들었던 새로운 음악영역에 노부인이 즐거운듯 톨비쉬에게 속삭였다.
"요즘 애들은 이런 음악을 좋아하니?"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공연되는 곡들은 늘 제멋대로거든요. 제 생각에는 이 분위기와 군것질거리때문에 오는것 같지만.."
흥에 겨워 즉석에서 붙여지는 것같은 가수의 목소리에 톨비쉬는 더욱 목소리를 낮추며 노부인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뺨이 맞닿을 거리에서도 어색하지 않은 두사람의 대화소리는 완전히 노래아래 파묻힌채 들리지 않았다. 톨비쉬가 한쪽 구석에 자리잡은 밀레시안을 발견하고서는 가볍게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노부인의 시선이 톨비쉬를 따라가려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톨비쉬가 손가락을 들어 신들린듯 현을 뜯는 가수를 가르켰다. 노부인의 눈이 크게 뜨여지며 즐거운 소녀의 웃음소리를 터트렸다.
"오늘 같은 공연은 좋아할겁니다"
공연이 끝나자 톨비쉬는 쓰레기를 한곳에 모아 컵안에 겹쳐두며 노부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수건으로 손끝과 입가를 닦은 노부인이 톨비쉬의 손을 잡고 일어서는동안 날카로운 자색의 눈동자가 빠져나가는 사람드르이 얼굴을 훑으며 느리게 깜빡였다. 톨비쉬가 보지 못한 순식간에 일어난 일. 톨비쉬가 조금 걸을까요? 하고 손을 잡아끌자 자세를 바로세운 노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숫가 위로 적당히 아름다운 노을이 내려앉은 시각이였다.
"즐거운 데이트구나"
"아직 별로 한것도 없습니다만"
"하지만 해가 지고 있지않니?"
"연인들의 놀이시간은 지금부터라서요"
"흐음, 요즘 아이들은 늦게까지 노는구나"
마치 7살짜리 꼬마아이를 타이르는 말투에 톨비쉬가 환한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가렸다.
노부인은 일부러 보지 못한것처럼 호수에 시선을 고정한채 느긋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노부인에게 익숙하게 보조를 맞추는 톨비쉬는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노부인이 기다렸다는듯 고개를 돌렸다.
"늘 그렇게 네가 먼저 일찍나오는거니?"
"정확히는 게이트에서부터 같이 출발합니다"
방, 이라는 단어를 얼버무린 톨비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밀레시안은 평범한 데이트를 원하지만 사실 첫 단추부터 그들에게서 평범함이라는 단어는 먼 것이였다. 약속을 잡는 방법부터 데이트 코스를 정하는 순서까지. 사실 그들에게 있어서 데이트의 첫 단계는 조원들의 훈련일정을 지시하는것.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지만 노부인은 알만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톨비쉬가 살짝 혀를 내둘렀다.
"그렇구나, 그래서 광장에서 꽃을사고 거리공연을 보러가고?"
"예."
"그 아이의 방에는 꽃이 넘쳐나겠구나"
"그렇게 자주나오지는 못합니다. 화병에 꽃을 갈아줘야 할 시기즈음이랄까요. 대신 리본을 모으는것 같더군요"
톨비쉬의 설명에 노부인이 들고있던 꽃다발을 내려다 보았다. 일부러 신경써서 고른 리본의 존재를 드디어 알아챈 노부인은 어머, 이런곳에 있었구나 라며 작게 웃음을 지었다. 하나 둘씩 가로등이 켜지는 이멘마하의 거리에서 노부인의 은반지가 반짝거렸다. 섬세하게 조각된 문양은 도시의 어둠빛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톨비쉬는 그 반지를 알고 있는지 살짝 시선을 돌렸다. 골목 사이에서 고양이를 쓰다듬던 밀레시안이 슬쩍 자리를 옮기는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정하기도 하지. 매 순간을 추억하는 아이구나."
"상냥하고, 귀여운 연인입니다."
"꽤 질투도 부릴줄 알고"
노부인의 가벼운 농담에 톨비쉬는 영문을 알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 프레이져와 세나의 활기찬 목소리가 그들을 반기며 자리로 안내했다. 톨비쉬가 익숙하게 메뉴를 주문시키는 동안 노부인은 리본을 푸르며 꽃다발을 정돈했다. 톨비쉬를 알아본 프레이져가 뭔가 말할것이 있는 사람처럼 입을 우물거렸지만 고든의 국자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주방안쪽으로 사라졌다. 노부인이 깊은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고르고 바른 자세. 톨비쉬는 여전하시다며 유리컵에 든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일단, 오늘 일은 고맙다고 말해둬야 겠구나. 네가 이렇게까지 약속을 성실하게 이행할줄은 몰랐어."
"당연히 해야할 일입니다."
"부탁한대로 꽤 멋지게 꾸미고 나오고 말이다"
"대모님의 멋지게 라는 주문을 잘 헤아릴수가 없어서 도움을 좀 받았지만요"
톨비쉬가 멋쩍게 웃자 노부인은 알고있단다 라고 웃으며 응수했다. 노부인의 시선이 한두번씩 레스토랑 건너편을 향하지만 톨비쉬는 눈치채지 못한듯 연신 물을 홀짝였다. 음식이 나오자 가벼운 잡담과 함께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네게 연인이 생기면 내게 소개해 달라고 약속했었지. 처음에는 장난삼아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꽤나 걱정되는 약속이였단다"
"너무 많이 데리고 올것 같았나요?"
"아니, 네가 한명도 데리고 오지 않을 것같아서"
톨비쉬에게 대모라고 불리운 노부인은 어딘지 서글픈 웃음으로 톨비쉬의 시선을 흘려보냈다.
톨비쉬는 잠시 눈을 굴리다가 그렇군요 라고 말을 받아주었다.
"엘베드의 조장직을 맞았다는 소식을 들었을땐, 아 이아이가 결국 길을 정했구나 라고 생각했지"
"조장이라고 해서 딱히 연애에 제한을 받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너는 스스로에게 너그럽지 못하지않니."
"......"
"네가 지키지 못할 사람을 만들바에야 아무도 만나지 않고 그저 검에만 목숨을 내던질까봐. 늘 걱정하고 염려했단다"
"좀 더 일찍 찾아뵐 것을 그랬습니다"
톨비쉬의 대답에 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정한놈. 이라는 작은 타박이 돌아왔지만 톨비쉬는 익숙한지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였다. 마치 부모님앞에서 혼이나는 소년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톨비쉬의 눈빛이 추억에 잠긴듯 깊게 가라앉았다. 늘 걱정하고 기도해주는 사람. 톨비쉬가 고개를 들자 노부인은 고개를 저으며 그의 말을 잘랐다. 노부인은 이미 무슨말을 하고 있을지 아는 눈치였다.
"괜찮단다."
"하지만,"
"규칙은 규칙이지않니"
노부인의 깐깐함에 톨비쉬가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스스로에게 너그럽지 못한것이 누구인건지 노부인은 식사가 끝났는지 입가를 꼼꼼하게 닦은뒤 찻잔에 손을 뻗었다. 치워진 테이블에는 가벼운 음료와 함께 보라빛 리본이 반짝이고 있었다. 노부인은 톨비쉬쪽을 응시하면서 어딘지 먼곳을 보는 눈으로 말을 이었다.
"네 연인이 '그' 밀레시안이라는 말을 들었을때는 조금 놀란것은 사실이지. 이럴 줄 알았으면 네게 별에 대한 정보를 보여주지 않는건데"
"대모님이 루나사조에 있으셨을때 분명 제게 많은것을 보여주셨지만 꼭 그때문에 밀레시안과 사랑에 빠진것은 아닙니다"
"흐음?"
"머릿속으로 몇번이고 그리고 예상했던 모습들이 얼마나 허망한것인지 별을 보는 순간 꺠닫게 되었거든요."
톨비쉬의 환한미소에 노부인은 조금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알수없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안심한것인지 즐거운것인지 입을 가리고 웃는 노부인이 다른한손으로 리본을 내밀며 톨비쉬에게 물었다.
"행복해보이는구나"
"예,"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 톨비쉬의 뒤쪽에서 작은 기침소리가 났다. 톨비쉬의 입장에선 식은땀이 나는 목소리였지만 노부인은 알고있었다는 손사래로 톨비쉬를 진정시켰다. 그제서야 노부인의 시선이 어디로 향한지 알게된 톨비쉬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며 초조하게 부인의 눈치를 살폈다. 노부인은 일부러 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대로라면 은퇴한 나는 밀레시안에게 접근하면 안되는 것이였겠지. 그래서 이 자리에 나오는것이 꽤나 고민되고 걱정되었지만 이 늙은이의 안부보다 네 미래가 더 중요하지 않니"
"윗쪽에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서라. 내가 아무리 한물간 기사단원이라고 해도 내 목소리가 아직 죽지는 않았어."
엘베드조장의 말을 거절하는 노부인은 눈을 흘기며 지금 누구앞에서 라고 작게 속삭였다. 톨비쉬가 살짝 눈치를 살피는동안 노부인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톨비쉬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서라는 것이 아닌 작별의 입맞춤을 하라는 가지런한 순등에 톨비쉬가 가만히 손을 받아 입을 맞추었다. 노부인은 숄을 한번 추스리고는 다정하게 작별인사를 건내었다.
"즐거웠단다. 네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것을 확인해서 정말 다행이야"
"저도 즐거웠습니다. 은둔하고 계신 분이 저 때문이 이렇게 나와주셔서 뭐라 말씀드려야할지.."
"톨비쉬-"
격식을 차려 인사를 하는 톨비쉬의 머리위에 가벼운 손이 내려앉았다. 세월의 무게만큼 덜어진 가냘프고 마른 손길에 톨비쉬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네가 부른다면 나는 언제든지 너를 도우러 올꺼란다."
"...."
"네가 별의 부름에 응답하듯이, 너도 나에겐 소중한 아이야"
"대모님"
"약속하마. 너희 앞에 어떤 시련이 있더라도, 이 늙은이는 너희를 축복할꺼란다."
노부인은 눈짓으로 리본을 가르키고는 톨비쉬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들어올렸다. 툭 하고 이마를 치는 노부인이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이제 네 자리로 돌아가렴. 나를 데리러 온 사람들이 있으니 에스코트는 필요없단다"
레스토랑 바깥에 서성이는 인영들에게 고개를 끄덕인 노부인이 자리를 뜨고 나자 머뭇거리는 기척이 톨비쉬의 등 뒤로 다가왔다. 나 실수한건가요? 하고 묻는 밀레에게 아니라고 고개를 저은 톨비쉬는 오늘일의 어디서부터를 설명해야할지 생각을 가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고 낮은 밤공기속에 호수의 냄새가 짙게 가라앉았다.
"당신에게 해 줄 이야기가 많습니다"
톨비쉬가 밀레시안의 어깨를 끌어안은채 문게이트가 있는 서쪽문으로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