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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비친 그림자

Tecla 2019. 12. 12. 15:29

데이르블라의 슬픔에서 타르라크를 떠올리는 밀레시안이 보고싶다.

너 따위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은 기분을 아느냐며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터트리는 데이르블라를 보며 밀레시안이 아주 담담하게 알지. 왜 모르겠어. 라고 대답했으면 좋겠다.
데이르블라는 그럴리 없다며 밀레의 공감을 부정. 만약 네가 진정으로 내 슬픔을 이해한다면, 너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내 앞에서 그런 오만함을 내보일 수 없을거라고. 인간도 아니면서, 사람인척 하는 괴물이기에 너는 내 마음을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밀레시안은 여전히 차분하게 데이르블라를 응시하며 마치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조곤조곤하게 내 살아온 생의 날들이 얼마나 되는데 그런일이 없겠니. 라고 속삭였으면.

수백번의 생을 반복하고 수천일의 밤을 흘려보내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을 떠나보내고 기억속에 파묻었는데 내 생에 그런이 하나 없었을까, 그런 상처 하나 없었을까. 
그리고 그 중에서 자유라는 이름을 부르짖던 이가 단 한명이라도 존재하지 못했을까. 
세상 모든 것보다 소중하다는 것의 의미를 몰랐지만 저울에서 내려와 보니 무게 추와 균형을 맞추던 것이 내 목숨이 아니었다. 
타들어갈 듯 눈부신 진리의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빛이 응시하던 것이 나의 눈동자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먼지처럼 부서져가는 신의 불길속에서 미안하다 말하는 유언을 이해하지 못해서, 끝내 삼켜낼 수 없어서,
어리석은 나는 이 세상이 아닌 저 사막의 땅끝에서 하늘의 문턱까지 내달렸고 천길보다도 깊은 심연의 아래까지 추락했다.
승리라는 것의 의미를 곱씹었다. 그럼에도 살아야한다는 절박함에 시간을 부둥켜안았다.
그 상실감속에서도 인간임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해일처럼 밀려오는 과거의 폭풍을 뚫고 미래로 가는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래서 이곳에 왔고 그래서 네 앞에 있어. 그러니 네가 나에게 너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네게 대답할 수 있어. 
그렇고 말고. 당연히 이해하고 말고. 하고 대답한 밀레시안은 잠시 입술을 짓씹다가 그러나 하고 주변에 서 있던 다른 검은달의 신도들을 응시. 

딱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 이해를 바로 너희가 나에게 물어보았다는 그 사실 하나뿐이야. 어떻게 감히 너희가, 자유를 관장하는 신의 날개 아래 숨어 진실조차 남기지 못했던 과거를 거짓된 미래로 적어넣었던 너희가.
라며 브류나크를 꺼내든 밀레가 데이르블라를 바라보았을 때 밀레시안의 시선은 눈앞에 있는 데이르블라가 아닌 그녀의 모습 위로 겹치는 희미한 금발 곱슬빛의 머리에 낡은 로브를 입은 청년을 바라보는 듯한 것으로 변질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마치 자신이 피르안의 행세를 했었을 때처럼 모호하게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는 눈빛에 잠시 혼란스러워 하던 데이르블라는 무의식중에 밀레의 곁에 서있던 피르안을 응시. 
피르안 또한 갑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데이르블라의 시선에 당황해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중 옆자리에서 속삭여져오는 작은 소리에 고개를 돌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작은 말소리가 어떻게 나에게 그의 이름을 물어볼 수가 있지? 라는 의미였다는 것을 한박자 늦게 인식하는 동안 피르안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밀레시안의 시선에 돌처럼 굳어버린 상태였으면. 한동안 피르안의 얼굴을 바라보던 밀레시안의 시선은 수면속에 천천히 가라앉은 돌맹이처럼 느릿느릿하게 윙하트로 이동. 겁에 질린 피르안이 무의식중에 팬던트를 움켜쥐고나서야 밀레시안도 흠칫 정신을 차린듯 다급하게 검은달 측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멍하니 넋을 놓고 있던 밀레시안을 놓칠리 없었던 검은달은 이미 행동에 들어갔고 그 공격을 막은 것은 다름아닌 밀레의 상태를 관찰하고 있던 멀린.
정신차려 밀레시안. 너 나한테 초코스테이크 하나 빚진거야. 하고 그을음이 묻은 너클을 실리엔 너클을 탁탁 털어내고는 가자, 라고 말하는듯 고갯짓을 까딱여보였으면 좋겠다. 
멀린과 데이르블라, 그리고 피르안을 번갈아 바라보던 밀레시안이 다시 검은달 쪽으로 몸을 돌리는 중 피르안을 향해 아주 자그맣게 미안. 이라고 속삭이는 결말로.

https://twitter.com/teclatia/status/1199684426835185664
19.11.27